[횡설수설/황인찬]깐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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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부’가 정치권에서 화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어제 소셜미디어에서 홍준표 의원을 향해 “경선이 끝나면 정권 교체를 위해 함께 어깨를 걸고 나가야 하는 동지들”이라며 “홍 선배님! 우리 깐부 아닌가요”라고 먼저 적었다. 이에 대해 홍 의원은 “깐부는 동지다. 동지는 동지를 음해하지 않는다”고 했다. ‘깐부 맺자’고 내민 손을 쳐내 버리는 모양새다.

▷깐부는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할 때 한 팀이나 동지를 뜻하는 은어다. 지역에 따라 깜보, 깜부, 가보, 갑오 등으로도 불렸는데 뜻에는 별 차이가 없다. 동아일보는 1968년 3월 21일자 ‘어린이 언어생활에 미치는 전파광고의 영향력’이란 기사에서 ‘깜보’를 ‘약속’을 뜻하는 아이들 사이의 은어로 소개한 적이 있다. 깐부 관계인 친구들은 보통 구슬과 딱지 같은 것도 거리낌 없이 서로 나누며 공유한다. 구슬의 홀짝을 맞히는 게임은 베팅한 만큼 가져가는 확률 게임인 만큼 밑천이 많을수록 유리하다. 승리를 위해선 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도 진즉에 알았던 것이다.

▷깐부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없는 말로, 어원조차 불투명하다. 국립국어원은 상호에 ‘깐부’가 들어간 치킨업체에 문의도 했지만 이북이 고향인 대표자가 어릴 적 들었던 말이라는 답변만 들었을 뿐 명확한 어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 에도시대 때 동업자 카르텔인 ‘가부나카마(株仲間)’나 고사성어 ‘관포지교(管鮑之交)’, 그리고 영어의 ‘콤보(Combo)’에서 유래됐다는 주장도 있으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추억 속에 잠자고 있던 깐부를 다시 깨운 것은 넷플릭스의 화제작 ‘오징어게임’이다. 극 중 구슬치기 게임 편에서 참가자 1번인 오일남(오영수 분)이 456번인 성기훈(이정재 분)에게 일대일 깐부를 맺자고 한다. 하지만 다른 팀이 아닌 상대방을 죽여야만 본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이면서 깐부 간의 신뢰와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른다.

▷오징어게임 속 일부 인물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며 깐부인 동료의 승리를 지원했고, 결국 우승은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이렇게 단순히 오징어게임처럼 흘러갈 수도 없고, 흘러가서도 안 된다. 국가의 미래 비전을 보이고 국민의 공감을 얻는 인물이 최종 승자가 되어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주요 공약이든 비리 의혹이든 철저하고 치열한 토론과 검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상대를 향한 막말과 막연한 트집 잡기는 곤란하다. 대선 본선이 다가오고 있다. 혼탁하고 무질서한 오징어게임식 경쟁은 가상의 드라마에서 본 것으로 충분하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깐부#윤석열#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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