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반도 외교 쇼에 박수만 칠 것인가[동아시론/안드레이 란코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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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발사하며 정상회담 암시한 北
보수 집권 우려에 높아진 회담 가능성
과거 실패 기억하고 과장·흥분 말아야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최근 북한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얼핏 보면 북한이 보내는 신호들은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북한은 긴장감을 고조시키려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은 9월 순항미사일,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을 시험 발사했다. 다른 편으로 최근 통신선을 다시 복구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열심히 제안하고 있는 종전선언에 관심을 표시했다고 하면서 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암시했다.

사실 이 신호들을 잘 보면 모순이 별로 없다. 북한의 장기적인 생존의 비밀은 북한 지도부가 이루려는 목표를 한순간도 잊지 않으면서 항상 체계적인 외교 작전을 전개하는 능력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현 단계에서 북한의 기본 목표는 무엇일까? 대북 제재를 완화시키고 남한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양보를 얻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제일 먼저 바이든 미 행정부가 제재 완화에 동의할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지원을 제공할 유일한 국가인 남한이 대북 지원을 행하기에 유리한 환경을 촉진해야 한다. 첫째는 미국을 관리하는 것을, 둘째는 남한 국내 정치 및 여론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사일 발사는 미국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백악관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다. 수많은 현안에 직면해 있는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에 무관심한 경향이 분명하다. 미국 측은 북한이 조만간 제재에 굴복할 것으로 예상하며 시간이 자신 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북한과의 회담을 서두를 생각이 없다. 그래서 북한은 보다 위험한 무기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는 것을 잘 보여줌으로써 시간이 미국 편이 아니라는 압박을 워싱턴에 보내고 있다. 북한의 의도는 미국이 지금 양보를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보다 큰 양보를 해야 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백악관에 알려 주는 것이다.

동시에 북한은 신중하다. 2018년 초 북한은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 선언을 했는데 순항미사일도,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도 이 약속을 위반하는 행위는 아니다. 미국에 불만을 열심히 표시하면서도 ‘레드 라인’을 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8월부터 활발해진 한미일 당국자의 북한 관련 외교 활동을 감안하면 북한에 성공이 없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고위급 외교관의 잦은 회담은 북-미 회담이나 다자 회담을 준비하는 조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대남 전략은 무엇일까? 지난 2년간 북한은 청와대의 제안을 무시했고, 가끔 문 대통령 개인에 대한 공격까지 했다. 북한의 기대와 달리 남한 측이 제재를 위반하고 미국의 입장에 도전하면서 대북 지원을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적대적 태도를 통해 청와대에 불만을 나타내며 남한이 조만간 대규모 대북 지원을 제공하도록 유도하려 했다.

그러나 9월 하순 북한은 종전선언에도, 정상회담에도 관심을 표시하며 U턴을 시작했다. 기본 이유는 남한 국내 정치로 생각된다. 북한 입장에서 보수 정권은 악몽과 같다. 보수파는 북한을 지원할 생각이 없고, 북한에 대해 진보파보다 훨씬 엄격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 정권이 연장된다면 문 정권의 대북 태도를 기본적으로 계승할 것이다.

지금 남한에서 여야의 집권 가능성은 비슷한 것처럼 보여서 북한은 진보파의 당선 가능성을 향상시킬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지난 4년간 진보파는 북한을 관리하는 능력을 현 정부의 중요한 장점으로 선전해 왔다. 대선 직전까지 남북 마찰이 지속된다면 진보 후보의 당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반대로 대선 직전에 남북의 ‘멋진 모습’을 연출한다면 여당에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제일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정상회담이지만 북한의 엄격한 방역조치를 감안하면 진짜 정상회담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최첨단 영상기술을 활용하는 비대면 회담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특히 현 정부의 탁월한 홍보·연출 능력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당연히 남북 비대면 회담과 동시에 미국과의 회담 또는 다자 회담이 시작된다면 핵심 관객들, 즉 남한 유권자들에게 보다 많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금년 말이나 내년 초, 우리는 4년 만에 다시 외교 쇼의 관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긴장 고조보다 회담은 대체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 쇼를 즐길 때에도 2018년 ‘한반도의 봄’의 실패와 그 미약한 결과들을 잊지 않으면서, 외교 쇼가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미칠 영향에 대해 흥분과 과장 평가를 하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외교 쇼#박수#미사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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