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만에 언론인이 노벨평화상 수상…“표현의 자유 수호한 공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8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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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왼쪽)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안드레이예비치 무라토프. 뉴시스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왼쪽)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안드레이예비치 무라토프. 뉴시스
2021년 노벨 평화상은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온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안드레이예비치 무라토프(60)와 필리핀 언론인 마리아 레사(58)에게 돌아갔다. 언론인의 노벨상 수상은 1935년 독일 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 이후 86년 만이다.

노벨위원회는 8일(현지 시간) “민주주의와 항구적인 평화의 전제 조건인 ‘표현의 자유’를 수호한 공로를 인정해 이들에게 평화상을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위원회는 “무라토프와 레사는 러시아와 필리핀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며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가 점점 더 불리한 환경에 직면한 세상에서 이들은 모든 언론인을 대표한다”고 밝혔다.

무라토프는 러시아의 주요 언론 중 유일하게 정부에 비판적인 매체로 꼽히는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이다. 그는 1993년 노바야 가제타를 만든 창립자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정직하고 독립적인 언론’을 기치로 내걸고 설립된 노바야 가제타는 체젠 전쟁의 실상을 폭로하고 정부의 권력 남용을 비판해왔다.

무라토프는 이날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노르웨이에서 걸려온 부재중 전화가 있어서 스팸전화인 줄 알았다. 탄압받고 있는 러시아 언론을 계속해서 대표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2007년 언론인보호위원회의 ‘국제 언론 자유상’을, 2016년에는 세계신문협회(WAN)가 수여하는 최고상인 ‘황금펜상’을 받았다. 2010년에는 언론 분야의 공로를 인정 받아 프랑스 정부로부터 명예 훈장을 받았다.

레사는 필리핀 탐사보도 온라인매체 레플러의 공동창립자이자 현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필리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에게 맞서는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꼽힌다. 2011년 레플러를 만든 뒤 두테르테 정부의 ‘마약과의 전쟁’이 2만 명 이상을 희생시켰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2015년에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과거 다바오 시장이었을 때 3명을 살해했고 이를 자신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놨다고 폭로했다. 2016년에는 두테르테가 군대까지 동원해 반정부 성향의 비평가들을 위협하고, 온라인에 가짜 뉴스를 퍼뜨렸다는 기획시리즈를 내보냈다. 직후 그는 두테르테의 지지자들로부터 하루에 2000건이 넘는 협박 문자를 받았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태어난 레사는 10살 때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23살 때 필리핀에 돌아와 CNN 특파원, ABS-CBN 기자로 근무했다. 그는 2018년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혔고 같은해 WAN이 수여하는 ‘황금펜상’을 받았다.

레사는 수상자로 발표된 직후 래플러를 통해 “내가 받은 게 아니라 2016년부터 팩트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래플러가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팩트 없는 세상은 진실과 신뢰없는 세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노벨위원회는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없이는 국가 간의 우애도, 군비 축소도, 더 나은 세계 질서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며 “올해 평화상 수상은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확고히 기반 한 것”이라고 했다. 1000만 크로나(약 13억5600만 원)의 상금은 두 수상자에게 나눠서 주어진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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