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美법률고문 헤럴드 고 사임…“바이든, 트럼프 반이민정책 답습”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5일 1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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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일대 법대 학장을 지낸 헤럴드 고(한국명 고홍주·67) 미국 국무부 법률고문이 현직을 내려놓을 예정이라고 폴리티코가 4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그는 사임을 준비하면서 최근 내부 메모에서 조 바이든 행정부가 물려받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고 고문은 이달 2일 국무부 법률팀에 보낸 내부 메모에서 ‘타이틀 42(Title 42)’로 불리는 연방 공중보건법을 ‘불법적’이고 ‘비인도적’이라고 비판하며 사임할 뜻을 밝혔다. 이 법은 보건 위기 하에서 외국인이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 공중보건법의 적용에 대해 “우리는 박해나 죽음, 고문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내몰거나 돌려보내지 말아야 할 우리의 법적 의무를 지속적으로 위반하고 있다”고 했다.

고 고문이 메모에서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이 법에 따라 올해 2월 이후 현재까지 70만 명이 추방됐고, 8월 한 달 동안만 9만1147명이 쫓겨났다. 그는 이를 “깜짝 놀랄 일”이라고 표현하며 “내가 이렇게도 강하게 지지하는 이 행정부에 맞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특히 이 법이 최근 대규모 지진과 대통령 암살 등으로 대혼란을 겪은 아이티의 이민 신청자 수천 명에게 미국에 난민 신청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돌려보내는 근거로 적용돼온 점을 지적했다.

그는 “법에 부합하고 훨씬 더 인도적인 대안들이 분명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동료들을 향해서는 “이 정책을 되돌리기 위해, 특히 아이티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요청한다”며 “이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이 나라가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고 고문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법률고문 활동을 포함해 2009~2013년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법률고문을 지냈던 국무부 고위인사. 그는 주미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5·16 쿠데타가 발생하자 미국에 망명한 고광림 박사의 3남으로, 예일대 법대 학장을 지냈다. 예일대 석좌교수 시절 이 대학을 다니던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맺은 사이이기도 하다.

고 고문은 사임 후 옥스퍼드대로 가서 교수 활동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무부 관계자는 “고 고문이 국무부를 떠나는 것은 오래 전부터 계획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백악관 청사 사우스 코트 강당에서 코로나19 백신 부스터 샷 접종 전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백악관 청사 사우스 코트 강당에서 코로나19 백신 부스터 샷 접종 전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AP/뉴시스]
이번 내부 메모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을 바이든 행정부가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내부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나왔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최근 17대의 비행기를 이용해 2000명의 아이티 국민을 돌려보내자 국무부 내부적으로 비판이 나오는 시점이었다. 지난달에는 대니얼 푸트 국무부 아이티 특사가 “비인간적이고 역효과를 낳는 (아이티 불법이민자 추방) 결정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다”며 사임하기도 했다.

미 연방법원은 지난달 “공중보건법을 근거로 난민 신청을 막을 수 없다”고 판결했지만 이는 최근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에서 뒤집힌 상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2일 이 조항이 계속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백악관과 국무부는 ‘타이틀42’가 이민 관련이 아니라 CDC에서 규정한 보건 기준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우리는 아직 팬데믹의 한가운데에 있다”며 “박해를 피해서 온 사람들의 경우 공중보건법의 적용을 일부 예외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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