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지자체 대북사업, 공모 없이 민간단체에 70억 보조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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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재정법 위반 논란
남북화해 분위기속 北지원 급증… 13개 사업, 공모없이 사업자 선정
사업 시행 앞 급조된 민간단체… 이미 끝난 사업에 예산 지원 등
국민 세금을 ‘쌈짓돈’처럼 집행… 野 “물품 가격-北 전달여부 감사를”

일부 광역지방자치단체가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면서 공모 절차를 하지 않고 민간단체에 예산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이 자치단체들이 ‘지방재정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고 있다.

29일 동아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 10개 광역자치단체가 15개의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시행했으며 사업자로 선정된 민간단체에 82억5000만 원을 지원했다. 이 중 부산시와 경남도를 제외한 8개 시도 13개 협력사업이 지방재정법에 따른 적법한 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고 보조금을 집행했다. 4년간 지원된 돈만 70억5500만 원에 이른다.

감사원 관계자는 “남북교류협력사업을 진행하면서 공모 절차 없이 보조금을 지급했다면 지방재정법 위반이 맞다”며 “다만 집행 과정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 공모 절차 생략… 지방재정법 위반

2017년부터 3년간 계속 사업으로 경기도가 진행한 ‘다제내성 결핵환자 지원사업’을 제외한 12개 사업이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된 2018년 이후 진행됐으며 모두 공모 절차를 생략했다.

지방재정법(제32조 2)에는 ‘자치단체가 지방보조금을 민간단체에 지원하려면 공모 절차를 거쳐 사업자를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신청자가 수행하지 않으면 사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만 예외’로 두고 있다. 이 조항은 법제처와 협의를 거쳐2021년 1월 삭제됐지만 이전 사업에 대해서는 적용된다.

하지만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통일부 지정 민간단체만 150개가 넘는다.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단체가 많은 만큼 공모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오히려 사업 추진에는 더 도움이 된다는 의미다. 한 민간단체 관계자는 “밀가루와 콩기름 같은 단순 물품 지원에 단서조항을 적용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 ‘쌈짓돈’처럼 보조금 지원

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다 보니 보조금을 받아간 단체들은 대부분 사업 시행을 앞두고 급하게 만들어지거나 이미 완료된 사업에 대해 허위로 보조금을 신청한 경우도 있었다.

취재진이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실에 요청해 입수한 자료를 보면 충남도는 2019년 5월 ‘북한 양파종자 지원사업’의 사업자로 한 민간단체를 선정했다. 이 단체를 통해 2019년 12월까지 황해도·평안도·평양시(만경대, 역포구)·남포시(용강) 등에 양파 종자(360kg)와 비닐박막(1600롤) 등을 보냈다. 사업비 4억6000만 원은 충남도의 남북교류협력기금에서 모두 충당했다.

보조금을 받은 단체는 사업자로 지정된 2019년 5월경 울산 남구에 설립됐다. 이 단체의 이사장은 울산시 남북교류협력위원회 공동대표인 A 씨다. 그는 통일부 교육위원과 전국 시도지사협의회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어린이 영양식 지원’(9억9300만 원) 등 4개 사업에 35억 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했다. 서울시도 ‘인도적(밀가루 콩기름) 지원’(5억 원) 등 2개 사업에 17억3000만 원을 민간단체에 집행했다.

이들 협력사업 모두 별도의 공모 절차 없이 사업자를 선정했다. 지방재정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 서범수 의원은 “경기도는 구체적인 자료 제출을 아예 거부하고 있다. 충남도도 협력사업을 통해 물품이 잘 전달됐는지, 북한으로 건넸다는 물품의 가격이 적절했는지 확인조차 어렵다”며 “감사원의 적극적인 감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 끝난 사업으로 보조금 타내기도

올 5월 감사원의 ‘울산시 북한 콩기름 지원 사업 감사보고서’가 공개되면서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지방재정법 위반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울산시는 2018년 10월 조례를 개정해 남북교류협력기금 5억 원을 마련했다. 그해 12월 대북협력 민간단체 이사장 B 씨가 송철호 시장을 만나 “북한에 콩기름을 보내는 사업을 준비 중”이라며 보조금 1억 원을 요청했다. 울산시는 공모 절차를 생략하고 2019년 1월 관련 위원회를 열어 보조금 지급 안건을 의결했다. 위원회 위원장은 송철호 시장이다. 며칠 뒤 B 씨의 민간단체에 1억 원이 지원됐다.

B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지자체가 공모하는 경우는 없고 공모할 일도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보조금을 받기 전인 2019년 1월 28일 통일부의 정산까지 모두 끝나 사업이 종료됐다. 이미 끝난 사업을 근거로 보조금을 타냈고 돈을 다른 계좌로 이체해 내부 차입금 상환 등 운영비로 사용했다. 또 중국에 있는 무역업체를 통해 허위 영수증까지 발급받았다. 보조금을 집행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울산시에 정산 서류까지 낸 것이다.

감사원은 지방재정법 위반 사실이 확인된 울산시에 대해 보조금 환수를 명령했다.



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지자체#대북사업#지방재정법 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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