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대장동 폭로 기자 겁박하는 투기 세력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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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대유 특종 지역신문에 2억 손배 폭탄
언론 입막기 전에 관련 자료부터 공개하라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대장동 특혜 의혹을 처음 보도한 곳은 비정규직 기자 5명이 꾸려가는 한 인터넷신문이다. 이 매체의 경기도청 출입기자는 제보를 받고 보완 취재를 거쳐 화천대유와 자회사들이 수천억 원의 개발 수익을 챙겼고 배후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있다는 소문이 돈다고 8월 31일 보도했다. 정교한 기사는 아니었지만 이를 계기로 대장동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화천대유는 보도가 나간 바로 다음 날 이 기자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과 인터넷 게시금지 및 삭제 가처분신청도 냈다. 흔히 이런 형태의 소송을 후속 보도를 막기 위한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고 부른다. 기자로선 민형사 소송 뒷감당을 하느라 추가 보도를 할 여력을 잃게 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염원하는 언론법 체제에선 대장동 같은 거물급 비리 의혹은 더욱 캐기 어렵다. 우선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적용돼 기자가 패소할 경우 물어야 하는 배상액은 몇 배로 뛴다. 1억 원으로 1200억 원을 벌어들이는 능력자들은 져도 그만이지만 회사에서 받는 급여로만 생활하는 기자라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고위공직자는 징벌적 손배 청구를 못 하도록 금지 규정을 두어도 이번처럼 화천대유가 대신 ‘이재명 후보는 관련이 없다’는 소송을 내면 된다. 대장동 의혹을 처음 보도한 매체는 네이버 뉴스 메뉴에 없다. 화천대유가 기사열람 차단 청구권을 행사하면 가뜩이나 널리 읽히기 힘든 지역 인터넷신문의 보도는 아예 묻혀버릴 수 있다. 지방 토호들의 비리는 현지 사정에 밝은 지역 언론이 먼저 포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당의 언론법은 이렇게 부패한 토호들에게 주류 언론의 추적 보도를 막는 든든한 방패가 되는 것이다.

대장동 의혹은 ‘단군 이래 최대 모범적 공익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체가 어떻게 지분 투자로 3억5000만 원을 내고 배당금 4040억 원과 분양사업 이익 3000억 원의 돈벼락을 맞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업 설계와 인허가 서류를 공개하면 풀릴 의문이다. 민간 건설업체가 참여한 아파트의 공사 원가를 공개하고, 수술실 폐쇄회로(CC)TV도 경기도의료원에 가장 먼저 설치한 투명행정의 달인이 왜 온 국민이 궁금해하는 공공사업 자료는 감추는가.

검찰 공수처 국가수사본부가 늑장 수사로 이름값도 못 하는 동안 게이트가 닫히지 않도록 뛰어다니는 이는 계좌 추적권도, 압수수색 권한도 없는 기자들이다. ‘대장동 사람들’엔 기자들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에 참담함을 공유한 채 대장동 일대 등기부등본을 떼고, 관련 인물들을 찾아다니고, 각종 심사 보고서를 뒤져가며 사건의 전모를 드러내줄 퍼즐 조각들을 찾고 있다. ‘고위험 고수익’이라던 대장동 개발이 실은 ‘땅 짚고 헤엄치기’였고, 국민의힘 인사도 연루돼 있으며, 대장동 사건은 부동산 게이트이자 권순일 전 대법관과 박영수 전 특검까지 만수산 드렁칡으로 얽힌 법조 게이트라는 사실이 이렇게 해서 밝혀졌다.

이쯤에서 묻고 싶다. 왜 여당은 ‘대장동이 게이트가 되도록 감시견 노릇도 않고 뭐 했느냐’며 언론을 질타하는 대신 ‘함부로 짖다간 다친다’는 식의 입법으로 입막음을 하려 드나. 의혹과 추측이 난무하는 공론장은 진상을 밝히려는 언론 탓인가, 감추려는 권력자들 때문인가. 국제사회까지 나서서 여당의 언론법에 반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가짜 뉴스 없는 세상을 진심으로 바란다면 공적 관심사에 책임 있는 자들이 자료를 충분히 공개하고 설명할 의무를 다하도록 강제하는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대장동#폭로 기자#화천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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