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를 잘못 썼단 말입니까”…‘대리점주 유족’ 두 번 울린 택배노조

변종국기자 입력 2021-09-28 19:13수정 2021-09-2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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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남편이 유서를 엉뚱하게 썼다는 말인가요.”

지난달 30일 극단적 선택을 한 김포 택배 대리점 소장 이모 씨(40)의 아내 박모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이 씨 유서에는 택배 노조원들의 집단 괴롭힘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택배노조는 이달 2일과 27일 두 차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이 씨의 유서 내용과 달랐다. 이 씨 사망은 노조원들의 괴롭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택배노조는 2일 기자회견에서 “고인이 4억 원 채무를 지고 있다”고 공개했다. “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됐는지 제보가 들어오고 있으나 고인의 명예를 위해 제외한다”며 숨겨야 할 무언가가 있는 듯 암시도 했다. 이 씨가 운영하던 대리점을 원청인 CJ대한통운 때문에 포기한 사연도 공개했다. 경제적 어려움과 대리점 운영 중단을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유추할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고인이 빚에 시달렸다’고 주장하던 택배노조는 27일 기자회견에서 느닷없이 이 씨를 고소득자로 묘사했다. 이 씨가 생전에 골프를 치는 등 여가를 즐기던 모습 사진을 SNS에서 무단으로 가져와 공개하며 “고인의 월 수익은 2000만 원을 상회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고인의 풍요로웠던 생활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세상을 등진 고인을 추모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노조가 공개한 사진 중 일부는 이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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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과 이 씨의 동료들은 “노조가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하며 고인을 두 번 죽였다”고 반발했다. 이 씨 유서에는 “강도 높은 노조 활동으로 하루하루는 지옥이었다”는 말은 있지만 택배노조가 주장하는 경제적 어려움과 원청 탓에 대한 얘기는 없다. 택배노조가 이 씨 죽음의 배경마저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한 것이다.

유족과 이 씨 동료들은 택배노조의 원청 책임론도 왜곡이라고 지적한다. 이 씨와 가까웠던 한 대리점 소장은 “이 씨는 노조와의 갈등 때문에 대리점을 포기했다. 주변 모두가 아는 이야기다. 그나마 잘 아는 일이 택배업이라 다시 대리점을 해보려고 입찰에 참여했다가 떨어졌을 뿐이다. 그런데 원청에게 이 씨 죽음의 책임을 따지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왜곡”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는 29일 조합원 자정 노력 등을 담은 최종 대책안을 공개한다. 이번에는 진솔한 사과와 제대로 된 재발 방지 대책이 담길지 궁금하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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