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이 좋아하면 사람도 살기 좋은 세상… 벌과 살아가는 세상 만들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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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에 선정된 김대립 씨

25일 김대립 대표가 연말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시상식 때 받을 핸드프린팅 동판 제작을 위한 손뜨기를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메밀꽃밭이 그의 토종벌꿀 농장이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25일 김대립 대표가 연말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시상식 때 받을 핸드프린팅 동판 제작을 위한 손뜨기를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메밀꽃밭이 그의 토종벌꿀 농장이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벌이 좋아하는 세상은 사람도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벌과 함께 하는 삶이 행복합니다.”

충북 청원군 낭성면 추정리에서 3대째 토종벌꿀을 만들고 있는 ‘청토청꿀’의 김대립 대표(46·청주시 한봉지회장). 그는 최근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하는 ‘2021 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축산분야)에 선정돼 12월 수상한다. 명인 명칭은 최고 수준의 농업기술을 활용해 지역농업과 농촌 발전에 기여한 농업기술자에게 주어진다.

김 대표는 토종벌 낭충봉아부패병 감염차단기술 개발과 개량, 사육기술 정립으로 토종벌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또 토종벌 인공분봉법 개발과 토종벌꿀 구조, 무지개꿀 수확법을 인터넷과 현장교육을 통해 전국의 양봉농가에 보급하기도 했다.

김 대표가 토종벌과 함께한 세월은 벌써 40년이 다 되어간다. 9세 때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양봉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쉴 새 없이 꽃들을 오가며 꿀을 만들어내는 벌들이 신기했다”며 “어린 나이였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토종벌의 매력에 흠뻑 빠진 김 대표는 고등학생 때부터 양봉에 나섰다. 학교 건물 옥상에 벌통을 가져다 놓을 정도로 토종벌 연구에 열심이었다. 대학 때는 전공(전자공학과)을 살려 ‘인공 분봉법’을 개발했다. 겨울철 벌통 내부의 온도를 자동 조절하는 전기장치를 통해 분봉 시기를 한 달 이상 앞당긴 것이다. 보통 벌은 5, 6월에 자연 분봉을 하는데 이때는 꽃에 꿀이 가장 많은 시기이다. 그러나 벌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활동이 부진하면 꿀 채취량이 떨어진다. 김 대표는 이 점에 착안해 벌이 5, 6월에 최적의 활동력을 갖도록 분봉 시기를 앞당겼다. 그는 이 장치 개발로 2003년 농림부로부터 ‘21세기를 이끌어 갈 농업분야 최연소 신지식인’에 선정됐다.

2005년에는 새로운 꿀 채취법을 개발해 ‘무지개꿀’이라는 이름을 붙여 서울의 유명 백화점에 일반 꿀의 2, 3배 가격으로 납품도 했다. 기존 토종꿀의 경우 가로로 꿀을 뜨는 탓에 진달래, 아카시아, 밤꽃, 들국화 등 계절별 꽃에서 채취한 꿀의 층 무늬를 볼 수 없고 다양한 맛도 느끼기 어렵다. 그는 층층이 쌓아 쪄 내는 전통 시루떡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벌통을 제작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무지개꿀에는 꿀 층 무늬가 있고 다양한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현재 그가 보유한 특허만 9개나 된다.

자타가 공인하는 토종벌 전문가인 그도 2010년 전국을 휩쓴 ‘낭충봉아부패병’을 피할 수 없었다. 전국 토종벌의 98%를 폐사시킨 이 ‘토종벌 에이즈’로 김 대표도 큰 피해를 입었다.

“모두들 속수무책이라고 했지만 그냥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양봉인들과 ‘토종벌 지킴이’를 만들고 해결책 찾기에 나섰습니다.”

김 대표는 병원체를 옮기는 곤충의 침투를 막는 ‘해충방지벌통’을 개발했다. 또 발병 위험시기 일벌의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여왕벌의 산란을 자동 조절하는 ‘다기능벌통’도 만들었다. 이 같은 방법으로 거의 초토화됐던 그의 양봉장은 모두 되살아났다.

오랜 기간 그를 지켜본 윤명혁 충북농업마이스터대학 학장은 “김 대표는 낭충봉아부패병을 막는데 1등 공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1년에 100여 곳 이상의 양봉장을 찾아 도움을 주는 등 헌신적인 활동에 충분히 명인 명칭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꿈은 6차 산업과 벌문화원 조성이다. 그는 “계절마다 주제형 밀원(蜜源)을 즐길 수 있는 벌문화원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재의 농장 인근에 11만9000m²의 새로운 농장도 만들고 있다. 또 “농장 주변 마을과 상생할 수 있도록 토종꿀은 물론 지역 농특산물의 생산·판매, 체험, 관광, 휴식 등이 어우러진 곳으로 꾸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청토청꿀#김대립 대표#대한민국 최고농업기술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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