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의무화 vs 안 맞을 자유… 美, 줄소송 번진 ‘불신 논쟁’[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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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의무접종’ 갈라진 미국
바이든 “100명 넘는 사업장 필수”
공화당 등 “기본권 침해”
美성인 53%“백신 부작용 더 위험”

18일 백신 의무화 조치에 반발한 시민들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시청 앞에서 ‘당신의 두려움 때문에 내 자유를 포기하지 
않겠다’ ‘코로나19 생존율은 99%지만 백신은 100% 돌이킬 수 없다’ 등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18일 백신 의무화 조치에 반발한 시민들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시청 앞에서 ‘당신의 두려움 때문에 내 자유를 포기하지 않겠다’ ‘코로나19 생존율은 99%지만 백신은 100% 돌이킬 수 없다’ 등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욕·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세계 각국이 속속 강도 높은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감염국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9일 연방 공무원, 100인 이상인 민간기업 근로자, 의료 종사자의 백신 접종을 사실상 의무화했다. 이번 조치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 최대 1억 명에 이른다. 21일에는 항공 여행을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에게도 접종 증명서 및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미 주요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최대 도시 뉴욕에서는 이달부터 음식점, 헬스장, 박물관, 공연장 등 거의 모든 실내 시설에 입장할 때 반드시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2대 도시 로스앤젤레스 역시 다음 달부터 술집과 클럽 등 실내 시설은 물론이고 1만 명 이상의 군중이 모인 야외 놀이공원과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접종 증명서를 내도록 했다.

백신을 맞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접종 의무화 정책을 도입한 것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는다. 이에 ‘전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란 의견과 ‘개인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 백신 거부 왜?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23일 기준 미국의 접종 완료율은 54.3%로 80%가 넘는 포르투갈과 아랍에미리트(UAE), 70%가 넘는 스페인과 싱가포르보다 뒤진다. 적지 않은 미국인이 백신 접종 의무화에 상당한 반감을 보이고 있어 접종 속도가 정체를 보이고, 신규 확진자 또한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백신 거부자들은 최소 수년, 길게는 10여 년이 걸리는 일반 백신 개발과 달리 코로나19 백신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개발됐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특히 우려한다.

8월 CNBC에 따르면 남부 텍사스주 댈러스에 사는 비기 모터 씨(77)는 “코로나19보다 백신이 더 두렵다. 백신 부작용으로 사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며 “백신을 맞느니 차라리 내 운을 시험하겠다”고 밝혔다. 미 비영리 단체 카이저가족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미 성인 중 53%가 ‘코로나19 감염’보다 ‘백신 부작용’을 더 두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전문가의 잘못된 행위로 인한 백신 전반에 대한 불신, 인종차별 역사, 음모론, 종교 등도 빼놓을 수 없다. 1998년 영국 의사 앤드루 웨이크필드가 미 의학 전문지 ‘랜싯’에 ‘홍역 예방 백신이 아동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허위 논문을 발표한 것은 많은 사람에게 백신에 대한 불신을 부추겼다. 훗날 그가 부적절한 연구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해당 논문이 철회됐음에도 후폭풍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세계 각국 부모들이 집단으로 자녀의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1991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는 거의 사라진 줄 알았던 홍역 환자가 대거 발생해 5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조사 결과 주된 감염 경로는 백신은커녕 치료약이나 체온계도 갖추지 않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은 채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한 교회 신도들로 밝혀졌다. 잘못된 믿음이 어린이의 희생을 낳은 셈이다.

1932년 미 공중보건국 또한 남부 앨라배마주의 저소득 흑인 밀집지역인 터스키기에서 매독 연구를 하며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질렀다. 당시 파견된 의사들은 매독으로 고통받는 흑인들에게 정확한 병명을 알려주지 않은 채 아스피린과 철분제를 치료제라고 나눠줬다. 매독을 치료할 수 있는 페니실린이 발견된 후에도 이 같은 행태를 이어갔다. 1973년에야 이런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악몽으로 적지 않은 흑인들이 백신 의무화 등 정부 주도의 의료 정책에 강한 트라우마를 보인다.

반면 의료계는 백신 반대 움직임을 백신에 대한 비합리적인 불신이 낳은 반지성의 산물로 보고 있다. 미접종 보균자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병을 옮길 가능성이 크고 이로 인해 사회 전체의 집단면역 체계 또한 무너진다는 이유에서다.

연방정부 또한 오래전부터 백신 접종을 독려해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8세기 천연두가 창궐하자 휘하 군인들에게 예방접종을 강제했다. 독립전쟁 당시 ‘천연두가 영국군보다 더 무서운 존재’란 말까지 돌았고 당시 감염자의 3분의 1이 숨졌을 정도로 천연두가 무서운 병이었기 때문이다. 미 ‘건국의 아버지’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 또한 저서에 “1736년 네 살짜리 아들을 천연두로 잃었다. 아이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된다”는 기록을 남겼다.

백신의 효과가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진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당시 장티푸스 등 전염병 백신을 의무적으로 맞은 군인들은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백신 문화’를 보급했다. 소아마비, 홍역, 볼거리 등에 대한 백신들도 이즈음 개발됐다. 각 주 또한 입학하는 초등학생들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속속 도입했다.

○ 의무화 밀어붙일수록 반발도 거세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민스코프극장에서 뮤지컬 ‘라이언킹’ 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이 입장 전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인서를 직원에게 보이고 있다. 뉴욕·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14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의 민스코프극장에서 뮤지컬 ‘라이언킹’ 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이 입장 전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인서를 직원에게 보이고 있다. 뉴욕·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바이든 행정부가 접종 의무화 강도를 높이면서 미 전역에서는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속속 충돌하고 있다.

WSJ에 따르면 21일 유나이티드항공사 직원 6명은 백신 접종 의무화에 반발해 텍사스주 법원에 항공사를 대상으로 한 소송을 제기했다. 회사가 종교나 의학적 이유로 접종을 거부하려는 직원들을 차별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것이 회사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로 작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앞서 8월 “모든 직원에게 백신 접종을 요구하는 것이 직원 안전은 물론이고 접종률 고조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접종을 의무화했다. 접종 대신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것 등의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 접종을 하지 않은 직원들은 무급 휴가를 받도록 했다.

일부 공무원의 반발도 거세다. 최근 로스앤젤레스 일부 소방관과 경찰들은 시 당국의 공무원 백신 접종 의무화 방침에 반발하며 “당국은 접종을 의무화시킬 헌법적 권리가 없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공무원이 실험 상태인 백신을 왜 먼저 맞아야 하느냐며 ‘마루타’가 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코로나19 백신의 장기적인 효과 및 부작용이 확인되기 전에 접종을 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며 일종의 ‘백신 독재’가 펼쳐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15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남부 플로리다주 로더힐의 아파트에서 2년째 살던 재스민 얼비 씨(28) 또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해 집주인 산티아고 알바레스 씨(81)와 거세게 충돌했다. 올해 초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회복된 알바레스 씨는 지난달 “모든 신규 세입자는 8월 15일까지, 기존 세입자는 임대 갱신 전에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접종하지 않을 사람은 나가라”고 통지했다. 그는 “친구 2명이 코로나19로 죽었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주민 또한 12명이 사망했다. 접종을 안 하는 사람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얼비 씨는 “접종 여부는 나의 개인 건강 정보이며 이를 집주인에게 공개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지만 결국 다른 집을 구해 이사했다. 그는 이사 후 변호사를 선임해 알바레스 씨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다.

음식점 업주의 반응도 엇갈린다. 유명 스테이크 식당 체인 ‘바비 밴스’의 조지프 스미스 대표는 폭스비즈니스에 출연해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로 막대한 영업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주에서 오는 50명 이상의 단체 손님들이 그룹 내 일부가 백신 접종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로 예약을 통째로 취소하고 있다”며 시 당국의 접종 증명서 강제화 조치가 과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백신 접종 여부를 확인하는 데 있어 손님과의 갈등이 불거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뉴욕 맨해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스트래티스 모포건 씨 또한 마켓워치에 “한 고객이 와서 ‘나는 3주 전에 코로나에서 회복돼 항체가 있다. 코로나19 검사 결과도 음성’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여기서 식사를 할 수 없다’고 손님을 쫓아내겠느냐”고 했다.

앞서 6월 인디애나대의 학생 8명은 학교 측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냈다. 대학 측이 가을학기부터 이 대학은 학생들의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종교적 또는 의료적 사유로 면제를 받은 사람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정기적인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학교 측이 접종을 강제해 신체에 대한 권리 등을 보장한 미 헌법을 위반했다. 대학이 우리들을 성숙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하는 어린이처럼 대했다”고 반발했다. 다음 달 법원은 “대학은 학생과 교수, 교직원의 합법적인 공중 보건 이익을 위해 합리적이고 정당한 백신 접종 절차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지만 학내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 정치 공방으로도 번져


백신 접종 의무화 논란에 대한 입장은 정치 성향에 따라 뚜렷하게 갈린다. 정치매체 액시오스와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10∼13일간 미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집권 민주당 지지자 중 약 80%는 “바이든 행정부의 민간기업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을 찬성한다”고 답했다. 야당 공화당 지지자의 찬성 비율은 약 30%에 불과했다.

CNN 방송과 여론조사업체 SSRS가 지난달 3일부터 이달 7일까지 실시한 조사에서도 민주당 지지자의 80%는 접종 의무화를 찬성했다. 공화당 지지자의 찬성 비율은 23%에 그쳤다. 중도파는 44%가 찬성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9일 백신 접종 의무화 조치를 발표하자 공화당 소속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행정명령으로 맞섰다. 이에 따라 16일부터 플로리다에서는 기업이 직원이나 고객에게 백신 접종서 제공을 요구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5000달러의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텍사스, 애리조나, 조지아 등 보수 성향이 강하고 역시 공화당 주지사가 있는 주들 또한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다.

마크 브르노비치 애리조나주 법무장관은 “행정부는 헌법상 백신 접종을 의무화할 권한이 없다. 이 조치는 개인의 자유, 연방주의 원칙, 권력분립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있는 미 24개 주 검찰총장은 16일 바이든 대통령에게 항의 서한도 보냈다. 이들은 특히 민간기업 직원의 접종을 강제하는 부분에 불만을 표시하며 “의무화 조치는 불법적이며 분열과 불신만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백신 접종 의무화를 인정해주는 쪽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6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도 백신 접종을 거부해 일자리를 잃은 의료진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이 병원의 백신 접종 의무화 정책에 대해 직원 안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라고 판단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공무원, 교사 등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쪽은 백신 접종 의무화가 타당하다는 흐름이 관찰된다. 폭스뉴스가 12∼15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교사의 백신 접종 의무화를 찬성하는 비율은 61%로 반대(36%)를 크게 앞섰다. 공무원에 대한 접종 의무화에 찬성하는 여론도 58%, 실내 시설에 입장할 때 접종 증명을 요구하자는 비율도 54%로 반대 의견보다 각각 10%포인트 이상 많았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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