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책임 없는 책임자… 안전사고는 왜 반복되는가

손효주 기자 입력 2021-09-25 03:00수정 2021-09-25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관리자들/이혁진 지음/196쪽·1만4000원·민음사
실직 후 하수관 설치 현장에서 일하게 된 선길에게 희한한 임무가 주어진다. 현장 식재료 비닐하우스를 멧돼지로부터 밤새 지키는 것. 그는 한 달간 살을 에는 추위와 고립의 공포에 떨며 보초 근무를 선다.

문제는 멧돼지가 없다는 것. 현장 소장은 이를 알면서도 보초를 계속하게 한다. 현장 관리자인 소장에게 선길은 같은 인격체가 아니라 누구든 선길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인부 관리 수단에 불과한 듯하다.

선길은 수모를 이겨내고 현장에 돌아와 일취월장한다. 인부들이 몰래 술을 마실 때도 일에 집중한다. 현장 반장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란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정말 (반장) 되면, 잘해 보고 싶기는 해요”라며 희망에 차 있다. 그날 선길은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안전 설비 공사도 생략한 채 일을 몰아붙인 소장 등 관리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소장과 반장들, 인부들의 입맞춤으로 성실함과 원칙 준수의 표본이던 선길은 술을 먹다가 사고를 당한 몹쓸 사람이 된다. “산 사람은 살고 봐야지”라는 말은 죽은 이에 대한 온갖 명예훼손을 정당화한다.

소설 속 이야기는 건설 현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책임은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것”이라는 말을 관리자의 미덕처럼 내뱉는 소장은 살아남기 위해 부하 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여느 조직 관리자 모습과 다르지 않다. 소장은 반장들을 관리자라고 추켜세우고 특정 반장의 성과를 과대평가해 경쟁을 유발하는 식으로 심리를 조종한다. 소설 내용처럼 “줄을 세우고 편을 갈라서 저희끼리 알아서 치고받도록, 그러느라 뭐가 중요하고 누가 이득을 보는지 생각도 못 하도록 하는 것”은 많은 조직 관리에 적용되는 불편한 진실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물 ‘D.P.’나 ‘오징어게임’과도 닮았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의 피해를 방관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렇다. 정작 모든 비극을 불러온 최고 관리자는 한 달 내내 나타나지 않는 멧돼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것도 비슷하다.

주요기사
다만 작가가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는 건 아니다. 마지막까지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평범한 영웅의 존재는 아직은 버텨볼 만하다는 희망을 미약하게나마 살려놓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관리자#실직#안전사고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