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기억에 남는 말들[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53>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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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1등 항해사를 세 번째로 했던 배에서의 일이다. 선장이 나를 불러 선장 진급 교육을 시켰다. 배에서는 예측불허의 일이 빈번하고 도와줄 사람도 없으므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A, B, C의 세 가지 해결책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플랜 A, 플랜 B, 플랜 C인 셈이다. 이후 사회에 진출해 보니 그분의 조언이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 정년퇴직 후 무엇을 할 것인가? 나름의 플랜 A가 있다. 잘 안될 때는 어쩌지? 플랜 B와 플랜 C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선장으로 다시 근무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3등 항해사로 사회 초년병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막내이다 보니 잡다한 일을 했다. 선장과 선배 항해사들이 시키는 일이 나에게 떨어졌다. 영어회화도 익히고 면허 시험도 준비해야 해서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과외의 일들로 하루를 다 써버리니 점차 불만이 쌓였다. 외국인들과 만나 영어에 재미를 붙일 때였다. 도선사 한 분이 “It is not my job(그건 내 일이 아니다)”이라는 문장을 사용했다. 2등 항해사가 추가적인 일을 시키면 몇 번인가 “not my job”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를 불러서 “not my job”이라는 말은 상사에 대한 답변으로 부적절하므로 사용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부정적인 말이 인간관계에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회에 나와서 처음 듣는 충고였다. 일이 주어지면 “예, 하겠습니다” 하고 긍정적인 답을 하는 습성을 붙이게 됐다.

“선장님, 안 됩니다”라는 말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과연 내 판단이 옳았는가? 선장과 나는 선교에서 항해 당직을 서고 있었다. 갑판에서 작업 중이던 갑판수가 바다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선장도 동시에 이를 보고 나에게 명령했다. “2항사, 배를 오른쪽으로 돌려.” 키를 잡은 내가 배를 돌리려는 순간 앞에 접근하는 선박이 보였다. 나는 “선장님, 앞에서 내려오는 선박이 있어서 안 됩니다”라고 다급히 말했다. 나는 갑판수가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앞의 배가 지나간 뒤 낙하지점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이틀에 걸쳐 수색작업을 했지만 결국 그를 찾지 못했다. 선장은 “그때 바로 배를 돌렸어도 되었는데” 하고 혼잣말을 했다. 충돌 위험을 무릅쓰고 선박을 돌렸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생각이 든다.

10여 년 바다 생활을 하면서 선원 약 200명과 많은 말을 주고받았다. “김 선장이 모두 책임집니다”라고 한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당시 선박을 포기하고 탈출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선원 20명을 모두 식당에 소집했다. “선박을 포기하고 탈출해야 합니다. 안전하게 육지로 가야 합니다. 모든 책임은 김 선장이 집니다.” 32세의 어린 나이였다. 선장으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점은 선박 포기라는 멍에를 짊어지면서도 그나마 잘한 일이었다. 그 “책임진다”는 말을 한 것이 내가 재기하여 법학교수가 된 원동력이 됐다. 바다에서 참 많은 인생 공부를 했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장
#김인현#바다#배#별#항해사#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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