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이재명 지사의 이중 잣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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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리스크 판단기준 애매
‘무늬만 공영’ 누가 납득하겠나

홍수용 산업2부장
홍수용 산업2부장
2015년 시작된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민간사업자인 화천대유와 천화동인 1∼7호는 3억5000만 원을 출자해 4040억 원(11만 %)을 벌었다. 민간의 폭리를 용인했다고 사람들은 분개하지만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위험을 부담한 결과, 즉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이라고 변호하고 나섰다.

대장동 사업 개시 1년 뒤인 2016년에는 민간사업자인 대우건설 컨소시엄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추진하는 과천지식정보타운 사업에 참여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 사업에서 민간이 폭리를 취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최고 1812 대 1의 청약 경쟁이 붙자 이 지사는 SNS에서 “조선시대 매점매석 행위가 성행해 강하게 규제했는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과천타운과 대장동 사업은 공공이 주도하되 민간을 참여시켜 사업비 부담을 줄이는 콘셉트가 비슷하다. 화천대유가 리스크를 떠안았다면 과천 사업에 뛰어든 건설사도 리스크를 부담했다. 과천 사업에 참여한 민간이 폭리를 취한 것이라면 대장동을 개발한 화천대유도 폭리를 취한 셈이다.

과천지구 조성에 참여한 민간사업자의 이윤은 법적으로 투자금의 6% 이내로 제한돼 있었다. 과천과 대장동 중 어느 쪽의 민간 이익이 더 컸는지 가리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지사 측은 할 말이 더 있을 것이다. ‘화천대유는 대장동 사업의 모든 리스크를 부담했다, 사업이 잘 안되면 대표가 신용불량자가 된다, 집도 경매에 넘어가고 가족도 길거리에 나앉는다’고 문답 자료에서 설명했다. 대장동 사업에 그런 리스크가 있었을까.

보통 사람들은 숫자를 싫어하지만 어려운 숫자는 때로 많은 것을 얘기해준다. 대장동 개발 논란에서 별로 주목을 끌지 못한 보통주 비율이 그런 숫자다. 대형 개발사업에서 보통주 자본금은 사업이 어그러질 때 손실을 줄여주는 안전판 역할을 한다. 사업이 잘못됐을 때 보통주 자본금을 헐어 대출이자를 갚거나 배당의 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보통주 비율이 높을수록 안전판이 탄탄해지는 구조다.

사업비 1조5000억 원 규모인 대장동 사업에서 보통주는 7%, 고작 3억5000만 원어치였다. 최악의 경우 사업이 망했다면 성남시는 손실을 충당할 수단이 3억5000만 원뿐인 셈이다. 이 지사 측은 화천대유가 사업 기간 동안만 운영되고 청산될 법인이어서 자본금을 늘릴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했지만 그건 보통주 자본금의 역할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도대체 왜 안전판도 없는 사업구조를 짠 것일까. 추정이지만 대장동 사업은 리스크라곤 없고 개발이익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애초부터 알았기 때문일 수 있다. 성남시 몫으로 떼어둔 5503억 원 이외에도 수천억 원의 개발이익이 추가로 생길 수 있다고 확신했기에 안전판 따위는 필요 없었던 것 아닌가. 그런데도 추가 개발이익이 생길 경우 분배하기로 하는 약정조차 없었다. 화천대유의 11만 % 수익률 논란이 그래서 생긴 것이다.

이 지사 측은 성남시의 개발이익 환수 가능성을 강조할 때는 리스크가 전혀 없다고 하다가 민간사업자의 폭리 논란에 해명할 때는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위험’을 부각했다. 나는 이 어색한 이중 잣대가 목에 걸린다. 화천대유라는 낯선 법인을 참여시킨 무늬만 공영인 개발을 추진하다가 생긴 무리수를 감추려다 논리에 허점이 생긴 것은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대장동 게이트’가 열릴지 모른다.



홍수용 산업2부장 legman@donga.com
#오늘과내일#이재명#이중잣대#대장동#화천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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