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재영]“사악해지지 말자” 플랫폼 기업이 새길 교훈

김재영 산업1부 차장 입력 2021-09-23 03:00수정 2021-09-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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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산업1부 차장
1984년 1월 슈퍼볼 경기에 맞춰 공개된 애플의 60초짜리 광고는 충격적이었다. 흡사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연상케 하는 ‘빅브러더’를 비춘 대형 스크린을 한 여성이 해머를 던져 산산조각 낸다. 컴퓨터 시장에서 IBM 독재를 부수고 자유와 다양성을 되찾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공개된 패러디 영상 속에선 빅브러더의 얼굴이 한입 베어 문 사과, 바로 애플로 바뀌었다. 애플의 인앱결제 강제화에 반발해 소송을 낸 미국 게임업체 에픽게임스가 “애플은 개발자를 억압하는 독재자”라고 비판한 것이다.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 구글의 창업 초기 모토다. 개방성을 중시했던 구글은 대용량의 지메일을 전 세계에 무료로 제공했고, 안드로이드 운영체계를 개발자들과 공유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앱결제 강제화 논란에서 보듯 시장을 독점하고 우월한 지위를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선 과거 모토에서 ‘don’t’가 사라졌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자만 교체될 뿐 세상은 그대로인 법인데 우리가 너무 순진했던 걸까. 과거 그들이 내세웠던 혁신에 열광했던 만큼 배신감은 더 크다. 최근 들어 국내 플랫폼 기업들에 쏟아지는 비난에도 이런 배신감이 크게 작용한다. 한때 그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주도할 혁신의 상징이었다. ‘타다 사태’에서 보듯 구산업과 신산업이 충돌할 때 소비자들은 기꺼이 혁신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이 혁신 없이 영역만 확대하는 모습을 보며 우려가 커졌다. 무료 서비스로 시장을 장악한 후 가격을 올려 소비자에게 피해를 줬다. 골목상권을 파고드는 플랫폼 기업에 소상공인들은 “큰 기업이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고 한탄한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고, 후배 격인 스타트업들은 대형 플랫폼 기업들이 투자, 협업 등을 빌미로 기술을 빼간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기업문화도 수평적이고 개방적일 것 같았지만 임원의 괴롭힘에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등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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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플랫폼 기업에 대해 기존 산업과 달리 완화된 규제를 적용해 준 것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경제에 활력을 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혁신이 없다면 더 이상 우대할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물론 플랫폼 기업들을 ‘혁신 없는 괴물’이라고만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부정적인 면만 강조하지 말고 그동안 이뤄낸 성과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기업을 희생양 삼아 몰아치듯 규제를 하다가 자칫 막 성장하려는 스타트업들에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공감을 얻으려면 플랫폼 기업들이 먼저 나서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플랫폼 생태계의 존재 의미가 있다.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빚은 카카오가 일부 사업에서 철수하고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로 한 것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사악해지지 말자’는 다짐을 플랫폼 기업들 모두 다시 한번 새겨야 할 때다.

김재영 산업1부 차장 redfoot@donga.com



#사악#플랫폼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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