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돈 빌릴 당시 갚을 능력 있었다면 사기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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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9월 21일 09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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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경.© 뉴스1
대법원 전경.© 뉴스1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 능력이 있었으나 그 이후 경제사정이 급격히 나빠져 돈을 갚지 못했다면,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해당할뿐 사기죄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1일 밝혔다.

A씨는 2015년 2월초 지인 B씨에게 “돈을 융통할 곳이 없는데 2000만원을 빌려주면 한 달뒤인 2월말에 갚겠다”며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았다.

검찰은 A씨가 당시 2억원이 넘는 채무가 있었고, A씨 명의로 된 별다른 재산도 없어 차용금을 변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B씨에게 돈을 편취했다고 보고 A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도 “피고인이 차용금을 2015년 2월말까지 변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하면서도 차용을 감행했으므로 사기죄에 관해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며 1심의 판단을 유지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르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기죄가 성립하는지는 행위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당사자가 돈을 빌릴 당시에는 변제할 의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비록 그 후에 변제하지 않고 있더라도 이는 민사상 채무불이행에 불과하며 형사상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씨는 2014~2015년에 약 7000만원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며 “비록 그 무렵 2억여원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었으나, 그 채무 전액에 관해 변제기가 도래했거나 독촉을 받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A씨의 경제사정은 회사에서 해고된 2016년 12월 이후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보이는데, A씨가 B씨에게 돈을 빌릴 당시 돈을 변제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식했다거나 그럼에도 차용을 감행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A씨가 ‘2월말에 돈을 갚겠다’고 말한 것도 B씨를 기망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두 사람은 변제기나 이자 등 변제조건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고, A씨가 퇴사한 이후인 2017년 4월에야 B씨가 변제독촉을 한 점에 비춰보면 A씨는 돈을 빨리 갚겠다는 취지에서 ‘2월말까지 갚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일뿐 차용금 변제를 2015년 2월말로 확정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또 “A씨가 ‘돈을 융통할 곳이 없다’며 자신의 신용부족 상태를 미리 고지한 이상, B씨가 기망을 당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A씨의 사기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2심 판단에는 사기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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