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언론중재법, 언론자유 위축 우려”...‘징벌적 손배’ 독소조항 구체적 언급은 없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7일 12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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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이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16차 전원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1.9.13/뉴스1
송두환 신임 국가인권위원장이 13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제16차 전원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1.9.13/뉴스1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언론중재 및 피해규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인권위는 17일 “언론의 책임성을 강화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일부 신설조항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이 같은 내용을 국회의장에게 의견표명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 “허위보도 등 개념 모호…언론 자유 위축 가능성”


인권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규정하고 있는 ‘허위·조작보도’ 개념과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이 모호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결정문에서 “(두 조항의) 추상성, 모호성으로 인해 진정한 의미의 허위·조작보도 외에도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이 다른 비판적 언론 보도나 범죄, 부패, 기업 비리 등을 조사하려는 탐사보도까지도 규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언론보도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개정안에서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요건인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멀티미디어 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기자가 일부 객관적 사실을 기반으로 검증을 거쳐 기사를 작성했으나, 사실 확인이 미진했거나 일부 오류가 있는 경우 어디까지가 진실한 보도이고 허위 사실에 기반한 보도로 볼 것인지를 명확히 확정하기 어렵다. ‘허위사실에 따른 언론보도’의 개념이 모호해질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개정안이 명시한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도 불명확하다고 적시했다. 현재 개정안은 언론보도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요건으로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으로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 “기사의 본질적인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새로운 사실을 구성하는 등 기사 내용을 왜곡하는 경우” 등을 들고 있는데, 그 대목도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인권위는 “제목과 시각자료를 조합해 유추할 수 있는 새로운 사실의 범주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이러한 새로운 사실이 기사가 의도한 주제와 어느 정도 달라져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명확한 예측이 어렵다”고 했다.

‘보복적인 허위·조작보도’에 대해선 “보복행위에 대한 예시를 해당 규정에 구체적으로 명시한 통상의 입법례와 달리 개정안에서는 보복적 행위에 대한 구체적 예시를 찾아볼 수 없어 보복이라는 추상적 개념에만 의존해 이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허위·조작보도’의 개념에 △허위성 △해악을 끼치려는 의도성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는 목적 △검증된 사실 또는 실제 언론보도가 된 것으로 오해하게 하는 조작행위 등의 구체적 요건을 명시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은 삭제하되,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분담할 수 있는 별도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하지만 인권위가 개정안의 핵심 독소 조항으로 지목되어 온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조항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아 반쪽짜리 의견 표명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 인권위 의견 표명, 구속력은 없어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권위는 2일 위원장과 3명의 상임위원이 참여하는 상임위원회에 ‘언론중재법 일부개정안 쟁점사안에 대한 보고의 건’을 현안검토 차원의 ‘보고 안건’으로 상정했다.

인권위가 상임위에 안건을 상정하기 이틀 전인 지난달 31일 여야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이달 27일로 미루고, 법안 검토를 위한 8명의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에 합의한 상태였다. 이전까지 언론중재법에 별다른 언급이 없던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여야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추가적인 검토를 위해 숙성의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처음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가 이 같은 움직임 등을 고려해 언론중재법 관련 논의에 착수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상임위는 법안 검토 결과 사안이 중대해 인권위의 의견표명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심의 안건’으로 바꿨다. 이어 위원장과 상임·비상임위원이 모두 참여하는 전원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판단해 안건을 전원위원회에 상정했다.

인권위는 여야의 언론중재법 합의안이 완성되는 26일 전에 국회의장에게 의견표명을 해야 한다고 보고 추석 연휴 이전에 의견을 내려면 13일 전원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 따라 서둘러 안건을 상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원위에서는 참석 위원 10명 중 과반의 찬성 의견으로 국회의장에게 의견표명을 하기로 결론을 냈다.

다만 인권위의 의견 표명은 구속력이 없어 국회가 인권위의 의견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 인권위법에 따르면 인권위는 인권 보호·향상을 위해 필요한 경우 관계기관에 권고 또는 의견표명을 할 수 있다. 권고의 경우 해당 기관에서는 90일 안에 권고사항의 이행계획을 인권위에 통지해야 하지만 의견 표명의 경우 이 같은 의무가 없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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