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국가 盛衰를 정치적 입방아 삼을 일인가

이철희 논설위원 입력 2021-09-16 03:00수정 2021-09-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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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고 위험한 자랑 ‘일본 추월론’
‘힘의 재편’ 격동기, 오만을 경계해야
이철희 논설위원
지난주 여당 원내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 역사는 문재인 정부를 해방 이후 75년 만에 일본을 넘어선 정부로 기록할 것입니다.” 그 근거란 게 K방역 성공, 카불의 기적, 대일 무역전쟁 승리, 선진국 진입 등이다. 따지고 들면 하나같이 아이들의 유치한 자랑으로 들릴 얘기인데, 그걸 엮어놓으면 이런 ‘역사’가 만들어진다.

정치의 얄팍함이야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우리 정부의 대외전략에도 배어 있는 것은 아닌지는 짚어야 할 문제다. 그 자랑거리 하나하나는 정부에서 나온 것들이다. 높아진 국가 위상을 알려 국민적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게 실상과 달리 부풀려진 것이고, 나아가 고약한 비교의 기준으로 이용된다면?

그중 하나,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7월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바꿨다는 대목을 보자. 사실 한국은 오래전부터 모든 국제기구에서 선진국으로 활동해왔다. 그럼에도 UNCTAD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한 것은 무역협상에서 일부 예외를 인정받기 위한 의도적 방치 또는 게으름의 소산이었다. 그래서 뒤늦게 제자리 찾은 것을 멋쩍어해야 할 판인데,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에까지 등장하는 홍보 소재가 됐다.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다는 주장은 어떤가.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과 국가경쟁력 순위, 국가신용평가 등급에서 앞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한국의 3배인 세계 3위이고, 한국이 손님으로 초대됐다고 자랑하던 주요 7개국(G7)의 멤버인 주인 국가다. 군사비도 여전히 한국보다 많이 쓴다. 그런 일본이 만만한 상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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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미중 경쟁으로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를 보면 한일 간 성쇠(盛衰)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입방아질인지 분명해진다. 중국의 급부상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은 사실 과장이 아니다. 중국 GDP는 이미 미국의 70%를 넘었고, 추월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1차 대전 때의 독일이나 2차 대전 때의 독일-일본 합산, 냉전 절정기의 소련까지 지난 100년간 그 어떤 미국의 적(敵)도 GDP가 미국의 60%를 넘은 적이 없다.

중국은 이제 미국의 패권을 끝낼 ‘100년 만의 대변혁기(百年未有之大變局)’를 맞았다며 국내 애국주의 열풍과 대외 팽창정책, 늑대외교로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과거 수십 년간 중국은 힘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며 와신상담했다. 그러던 중국의 노골적 변신은 내년 20차 당 대회를 앞둔 시진핑의 장기집권 구상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미중 패권의 향배는 당장 가늠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패권경쟁이야말로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시험대라는 점이다. 중국의 거대한 경제 규모와 세계시장 확장, 나아가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같은 첨단기술 투자는 가히 위협적이다. 반면 미국의 군사력과 소프트파워는 중국을 압도하고, 특히 동맹 네트워크는 중국을 누르는 최대 무기가 될 것이다.

갈등의 한일관계지만 미중 패권다툼 속에선 동병상련의 처지이다. 정작 걱정해야 할 일은 갈수록 더 벌어지는 중국과의 격차다. 잘나가던 이웃의 부진을 고소해하는 것은 내려다보던 이웃의 성장에 눈을 치켜뜨는 것만큼이나 유치하다. 더욱이 정치라는 이름의 ‘정신승리’는 국가의 눈도 멀게 한다. 올해는 루쉰의 ‘아Q정전’ 주간지 연재 100년이 된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일본 추월론#격동기#오만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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