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 50년 무령왕릉… 왕비의 ‘동탁은잔’ 등 5232점 처음 한자리에

공주=김상운 기자 , 공주=이기욱 기자 입력 2021-09-14 03:00수정 2021-09-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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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박물관 무령왕릉展 오늘 개막
국립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 도입부에 전시된 ‘청동받침 은그릇(동탁은잔)’. 15cm 높이의 금속 공예품으로 도가 사상을 반영한 산봉우리와 용, 봉황 등이 정밀하게 새겨져 있다.
금과 은으로 겹겹이 장식된 연꽃 주위를 산봉우리와 능선이 휘감는다. 네 개의 봉우리 사이에는 봉황과 사슴이 세밀한 필선으로 새겨져 있다. 뚜껑과 결합된 그릇에는 연꽃 위로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세 마리 용이 빙 둘러싸고 있다. 1971년 충남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청동받침 은그릇(동탁은잔·銅托銀盞)’은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금동대향로를 연상시킨다. 금동대향로도 역동적인 용틀임과 피어오르는 연꽃무늬가 절묘한 결합을 이루고 있다. 15cm 높이의 화려한 동탁은잔이 은으로 만든 뚜껑과 그릇, 청동받침으로 구성돼 있다면 금동대향로는 금동 뚜껑과 받침이 한 세트를 이룬다.

발굴단이 내부에 진입한 직후 연도(무덤길)에서 발견한 진묘수(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 국립공주박물관·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14일 개막하는 국립공주박물관의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은 백제사를 다시 쓴 무령왕릉 출토 유물 5232점 전체를 처음 선보인다. 무령왕릉은 지석(誌石)을 통해 묻힌 이의 이름과 무덤 조성연도가 확인된 유일한 삼국시대 왕릉이라는 점에서 큰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정문 왼쪽의 기존 상설전시실(웅진백제실)을 무령왕릉 출토품으로만 리모델링하는 한편으로 오른쪽의 별도 기획전시실도 관련 전시로 꾸몄다. 한수 국립공주박물관장은 “웅진백제실이 관꾸미개 등 화려한 명품 유물로 구성됐다면 기획전시실은 발굴 과정과 이후 연구 성과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기획됐다”고 설명했다.

무령왕이 머리에 쓴 관꾸미개(왼쪽)와 허리에 찬 용·봉황무늬 고리자루큰칼의 손잡이.
13일 미리 둘러본 전시에서 압권은 왕비의 머리맡에서 발견된 동탁은잔이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는 아니지만 크기가 작다 보니 본연의 가치에 비해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유물이다. 이에 박물관은 상설전시실 도입부 전체를 동탁은잔의 단독 전시공간으로 할애했다. 동탁은잔은 용·봉황무늬 고리자루큰칼(용봉문환두대도·龍鳳文環頭大刀) 등 화려한 금속공예품과 더불어 521년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에 사신을 보내 갱위강국(更爲强國·다시 강국이 되었다)을 선포할 당시 백제 문화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1971년 7월 8일 오후 발굴단이 무덤 앞 막음벽돌을 들어내는 모습.
동탁은잔은 고리자루큰칼, 청동거울 등과 더불어 제작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앞서 일본학계는 유물의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감안할 때 중국 양나라가 은잔을 만들어 무령왕에게 하사했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부여 능산리 절터, 익산 왕궁리 유적 등에서 백제 고고자료가 꾸준히 축적됨에 따라 중국 양식을 백제가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자체 제작했다는 국내 학계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남조에서 수입된 것으로 본 무령왕릉 출토 청동거울 3점도 백제 장인들이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주경미 충남대 강사는 지난해 열린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한 ‘무령왕릉 출토 금속공예품의 현황과 의의’ 논문에서 “무령왕의 발 부근에 부장된 신수경(청동거울)의 경우 무령왕 연간의 백제 장인들이 새로운 밀랍 주조기법으로 제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중국 한나라 때 청동거울 유물 중 무령왕릉 출토품과 유사한 문양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표면에 새겨진 일부 글자가 지워진 흔적이 발견된 게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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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선 20세기 최대 고고 발견으로 평가되는 무령왕릉 발굴이 졸속으로 진행된 뼈아픈 역사도 조명됐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보수공사 중 무령왕릉이 우연히 발견된 날인 1971년 7월 5일 오전 10시 30분 김영배 당시 국립박물관 공주분관장이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에 보낸 보고서에는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이 담겨 있다. 이번에 전시된 보고서에서 김 분관장은 “귀중한 유적인 만큼 시급히 조사 작업을 진행치 않으면 도굴 및 파괴의 우려가 있으니 긴급 조치 바람”이라고 썼다. 이에 따라 무령왕릉 유물 수천 점은 출토 위치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채 이틀 만에 부대에 실려 옮겨졌다.

“졸속발굴 아픔… 과학분석 통한 새 성과 다행”
발굴 참여 지건길 前중앙박물관장
“부대에 담아 이틀 만에 발굴 끝내… 2년후 천마총 발굴때 반면교사로”



“1973년 천마총을 발굴할 때 2년 전 무령왕릉에서의 졸속이 뇌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13일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만난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78·사진)은 “예상치 못한 완전분(도굴되지 않은 무덤) 발견에 조사원들 모두 정신이 혼미해졌다”며 무령왕릉 발굴 상황을 돌이켰다. 꼬박 이틀 만에 수천 점의 유물 수습을 마친 무령왕릉 발굴을 반면교사로 삼아 2년 뒤 천마총 발굴 때는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1970년대 국책 발굴사업의 효시로 통하는 천마총 발굴은 약 1년에 걸쳐 진행됐다. 그는 “무령왕릉도 제대로 발굴했다면 천마총만큼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발굴보고서 등에 따르면 1971년 7월 5일 오전 10시 30분 공주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공사 도중 우연히 무령왕릉이 발견됐다. 이어 이틀 뒤인 7일 오전 발굴에 들어가 이튿날 오후 10시부터 유물 수습이 시작됐다. 발굴단은 밤새도록 5000여 점의 유물을 부대에 퍼 담아 외부로 옮겼다. 이 작업이 모두 종료된 게 9일 오전 9시. 발굴에 착수한 지 만 이틀 만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유물은 정확한 출토 위치를 몰라 성격을 규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무덤 바닥에서 대거 쓸려나온 수많은 금속 장식들이 대표적이다.

지 전 관장은 무령왕릉 발굴 당시 28세의 문화재연구실(현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속 학예연구사였다. 발굴단장이자 국립박물관장이던 삼불 김원룡 교수는 그의 서울대 고고학과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만 해도 하늘 같은 스승에게 ‘차근차근 조사하자’고 직언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무령왕릉 발굴 성과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수습된 유물들에 대한 과학 분석을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는 “2001년부터 유물에 대한 정밀 조사가 이뤄져 ‘신(新)보고서’ 발간으로 이어졌다. 발굴 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몇 해 전 경주 월성 발굴 속도전 논란과 맞물려 “학술 발굴이 차근차근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공주=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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