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과 유머를 하나로 엮는 여유[클래식의 품격/나성인의 같이 들으실래요]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2021-09-14 03:00수정 2021-09-14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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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든 ‘놀람’, 1791년.
괴테는 “고전적인 것은 건강하지만, 낭만적인 것은 병적”이라고 말했다. 질서와 조화, 완성의 세계관에 비해 역동과 극단, 혁파의 세계관이 지닐 수 있는 위험성을 표현한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대혼란과 단두대가 숱한 사람들을 먹어 치우던 이 시기가 그에게 회의감을 준 것이었다.

교향곡은 이러한 세계사적 변혁기에 태동하여 전성기를 구가한 장르다. 왜 굳이 오십여 명이나 되는 연주자들이 한 무대 위에 올라가는 새로운 곡이 필요했을까. 하나의 ‘커다란 사회’를 음악으로 그려내기 위해서였다. 소수 특권 귀족층의 ‘작은 사회’(앙상블)가 아니라 다수 시민 사회를 그리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교향곡의 탄생은 시민적 계몽이면서 문화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은 조화의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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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시기에 나타난 이가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이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연구한 새로운 작곡법은 작은 주제 하나를 다양하게 조합, 발전, 변형시켜 전체 곡을 일관성 있게 작곡하는 방식이었다. 주제 동기 작곡법이라는 이 방식을 하이든은 의무를 다하듯 성실하게 따랐다. 숙련에 창조성이 더해지자 하이든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가가 되어 있었다. “연습이 장인을 만든다”는 독일 속담이 어울리는 경우다.

성실함만큼이나 중요한 하이든의 성정은 유머였다. 그의 음악에는 듣는 이를 즐겁게 해 주려는 농담과 위트가 가득하다. 유머는 합리성의 가치를 강조하는 효과를 지닌다. 하이든의 음악은 고리타분한 면이 전혀 없다. 새로움, 재치, 의외성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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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런던 공연을 위해 1791년 작곡된 교향곡 94번 ‘놀람’은 하이든의 합리성과 유머를 동시에 경험시켜주는 명작이다. 듣는 이의 몰입을 도와주는 서주가 붙은 제1악장은 유쾌하고 쾌활한 움직임이 인상적이다. 제2악장 안단테는 제1주제 이후 갑작스러운 팀파니의 타격으로 유명한 악장이다. 졸고 있는 귀부인을 깜짝 놀라게 하려 했다는 설이 정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변주곡의 자유로움 안에서 듣는 이의 예상을 비켜가며 단 한 번도 뻔하게 흘러가지 않는 유연함이 놀라움을 준다. 친숙한 3악장 미뉴에트는 귀족적인 느낌 대신 역동성으로 새로운 느낌을 준다. 마지막 4악장 피날레는 소나타 형식과 론도 형식이 겹쳐져 있는 듯한 간결한 진행이 인상적이다. 형식적으로 탄탄하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는 하이든 음악은 이처럼 형식주의의 위험을 넉넉히 피해 시종일관 듣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신을 드러내기 이전에 듣는 이의 즐거움을 앞세운다. 재주나 효과보다 기본기와 원칙을 그러나 웃으면서 일러준다. 그래서 하이든의 음악은 고전적으로 건강하다. 새로움에 민감하지만 원칙을 지키는 힘이 자꾸 약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칙과 유머를 엮어낼 줄 아는 유연성 혹은 여유가 부족해진 까닭은 아닐까.

나성인 클래식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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