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코로나’ 덴마크, 보건-수학-심리학자 모여 단계별 자료 제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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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세계 각국 ‘위드 코로나’ 각양각색… 사회적 합의는 어떻게 이끌었나
싱가포르, ‘풍토병’으로 관리 나서
영국, 점진적-체계적 방역 완화
‘한국형 위드 코로나’ 합의기구 필요

프랑스 파리의 한 식당 앞에서 수십 명의 시민들이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7월부터 대기줄, 집회·행사 등 일부 상황을 제외하고는 야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파리=AP뉴시스
프랑스 파리의 한 식당 앞에서 수십 명의 시민들이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7월부터 대기줄, 집회·행사 등 일부 상황을 제외하고는 야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파리=AP뉴시스
“대화할 때 마스크 쓰세요.”

지난달 23일(현지 시간) 싱가포르의 한 식당에 앉아 있던 니콜 히아 씨(24·여)에게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다가와 한 말이다. 그는 싱가포르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고용한 ‘사회적 거리 두기 지킴이(Safe Distancing Ambassador)’다. 이들은 마스크 착용 등 시민들이 방역 수칙을 지키는지 점검한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국가 중 방역과 생활의 조화를 위한 ‘위드(with) 코로나’에 선도적으로 나선 국가다. 현재 무증상·경증 환자의 자택 치료 도입을 준비 중이다. 그 대신 일반 방역 수칙은 여전히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싱가포르에선 식당 안에서 음악을 트는 것이 금지됐다. 노래를 틀면 크게 말해야 하고, 결과적으로 비말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히아 씨는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을 막기 위해 정부가 방역 조치를 천천히 완화하는 게 느껴질 정도”라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에서 위드 코로나 실험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방역 조치를 사실상 전면 해제한 곳이 있는가 하면, 철저한 방역 수칙 준수를 전제로 위드 코로나를 이행하는 곳도 있다. 다만 공통점은 있다. 대부분 높은 백신 접종률을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 이후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 엄격한 방역 지침 유지하는 싱가포르

지난달 6일 싱가포르 정부는 코로나19를 풍토병으로 관리하기 위한 4단계 로드맵을 발표했다. 독감, 수족구, 수두 같은 일반 전염병 수준에 맞춰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발표 당시 싱가포르의 접종 완료율은 63.5%였다.

지난달 10일부터 새로운 정책이 시작됐지만 싱가포르 국민들은 극적인 변화나 희망찬 기류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방역 수칙이 여전히 엄격한 탓이다.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방역 강도가 다소 바뀐다. 일례로 싱가포르에서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만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 현지 호텔에서 일하는 오유진 씨(23·여)는 “7월 외국인 대상 접종이 시작되자마자 백신을 맞았다”며 “이젠 식사 시간에 나 때문에 동료들이 음식을 포장해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불편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 로드맵에는 2단계부터 영업 제한이 완화된다. 위드 코로나를 시작했지만 아직은 1단계가 적용 중이다. 1단계 정책의 중심은 치료 체계 전환이다. 병원 대신 사회돌봄센터(CCF·한국의 생활치료센터)에서 치료하는 환자 수를 늘릴 계획이다. 자가 치료 도입도 포함됐다. 접종을 완료했으나 코로나19에 감염된 무증상·경증 환자를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 중이다.

○ 마스크 벗고 운명 엇갈린 영국과 덴마크

“이 로드맵은 ‘자유’로 가는 일방통행로입니다.”(올 2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3차 유행을 피하고자 조심스럽게 하겠습니다.”(올 3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

유럽의 대표적인 위드 코로나 국가인 영국은 2월, 덴마크는 4월부터 방역 완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방역 완화 방법을 설명하는 두 나라 총리의 ‘온도차’는 뚜렷했다.

영국은 급격하게 방역을 완화한 대표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점진적으로 방역 완화가 이뤄졌다. 영국이 방역 완화 3단계로 넘어가던 5월 중순만 해도 영국 내 신규 확진자는 하루 2000명대로 안정세였다. 이는 인구 100만 명당 33명꼴이다. 최근 4차 유행이 진행 중인 한국의 인구 100만 명당 확진자가 33명(8일 기준)이다.

문제는 인도발 ‘델타 변이’였다. 영국에선 3단계와 함께 사적 모임이 실내 6명, 실외 30명까지 가능해지고 식당과 술집의 영업이 본격화됐다. 그때부터 확진자가 급격히 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7월 19일 사실상 모든 방역 조치를 해제했다. 지난해 3월 봉쇄가 시작되고 16개월 만에 찾아온 ‘자유의 날’이다. 이날 신규 확진자는 3만9359명, 그리고 1주간 평균 사망자는 42명에 달했다. 4만∼5만 명대 확진자를 기록하던 1월에 사망자는 1200명을 넘었다.

이런 영국의 상황은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9일 신규 확진자 수는 3만8975명이다. 결국 영국 정부는 백신 여권 도입을 예고했다. 이달 말부터 접종 여부를 증명하는 백신 여권을 보여줘야 나이트클럽과 대규모 행사장 입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현재 63.8%인 접종 완료율도 높일 계획이다.

덴마크는 방역 완화 이후에도 확진자가 급증하지 않은 사례다. 덴마크에서는 방역 완화가 1, 2주 단위로 세밀하게 이뤄졌다. 연이은 백신 수급 악재도 극복했다. 그 결과 접종 완료율이 6일 기준 73.3%로 세계 최상위권이다. 10일부터는 나이트클럽과 스포츠 경기 관련 방역 제한을 모두 풀었다. 마스크 착용은 덴마크에서 더 이상 의무가 아니고, 한국의 전자출입명부 같은 ‘코로나패스’를 찍지 않아도 된다. 7일 덴마크의 신규 확진자는 451명으로 최근 두 달 중 가장 적었다. 이날 사망자는 2명뿐이었다.

덴마크의 안정적인 위드 코로나 전환 비결로는 중요한 분기점마다 과학적 분석을 통해 결정을 내린 점이 꼽힌다. 전자공학, 감염학, 경제학, 수학, 커뮤니케이션학, 정치학, 심리학 전공자들이 모인 전문가 그룹이 ‘포스트 코로나19’ 재개방 이후의 변화를 검토해 방역 완화 초안을 만들었다. 이들이 만든 보고서는 방역당국에 전달되는 동시에 국민들에게도 가감 없이 공개됐다. 이를 통해 국민들의 위드 코로나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전문가들은 현재 봉쇄 없이도 코로나19에 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역 전략을 만들고 있다.

○ 다양성 갖춘 사회적 합의기구 만들자


현재 전 세계 10여 개 국가가 위드 코로나를 시작했거나 시작할 예정이다. 일본은 11월 정상화 조치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전 국민 2차 접종이 마무리되는 시기에 맞췄다. 말레이시아도 여러 차례 봉쇄 조치 끝에 위드 코로나를 이행하기로 결정했다. 성인 4명 중 3명이 접종을 마치는 10월 말부터 이웃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를 풍토병 수준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호주도 접종률이 70∼80%에 이르면 방역을 완화하기로 했다. 이 밖에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태국 등이 코로나19 확산 이후 ‘일상 정상화’로 향하고 있다.

한국이 이들처럼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기 위해선 높은 백신 접종 완료율이 첫 번째 조건으로 꼽힌다. 델타 변이 이후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에 논의되던 ‘접종률 70%’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역당국 역시 “10월 말 성인 80%가 접종을 완료해야 전환 시점을 논의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덴마크는 이미 인구 대비 접종 완료율을 73.3%까지 올렸지만 접종률이 낮은 집단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접종자 중심의 대유행이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민자 비율이 높은 지역의 접종률이 50∼6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한국형 위드 코로나’의 선결 조건으로 새로운 사회적 합의기구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현재 사회적 거리 두기 자문기구인 생활방역위원회(생방위)는 방역당국의 ‘방향성’을 조언하는 수준에 그친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전문성과 대표성을 토대로 논의한 후, 책임 있게 한국의 위드 코로나 방향을 결정해야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갑 한림대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정부가 전문가들에게 데이터를 공유해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장기 전략을 짜는 태스크포스(TF)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방역당국 차원을 넘어선, 범정부 차원의 논의기구 구성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영국의 경우를 참고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영국은 긴급상황과학자문그룹(SAGE)이 정부에 과학적 분석 자료를 제공한다. SAGE는 총리실 산하에 꾸려진 조직으로 현재 350명 이상의 민간 전문가가 활동 중이다. 2009년 신종플루 대응을 위해 처음 꾸려진 뒤 긴급 상황에만 가동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시행해도 실내에선 상당기간 마스크 써야 할 것”
전문가 - 당국 “단계적 일상 회복… 확진자 줄이려는 노력 계속해야”
방역 완화해도 일부 거리두기 유지… 매일 ‘확진자수 공개’는 재고해 볼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방역과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위드(with) 코로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위드 코로나 전환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가 크고 작은 오해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과 방역당국의 설명을 통해 위드 코로나를 둘러싼 궁금증을 차례로 정리했다.

가장 흔한 오해는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 등 방역 조치가 일시에 해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례로 11월 초부터 마스크나 모임 제한이 없어질 수 있다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전문가와 방역당국은 “그럴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방역을 완화해도 위중증 환자 급증에 대비한 ‘비상 대응 체제’로 거리 두기 체계 자체는 일부 남겨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역시 “거리 두기를 점진적으로 완화해 확진자 규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역당국도 급격한 방역 완화 기대를 경계하는 분위기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최근 “거리 두기 장기화로 피로감이 커지면서 일시에 이뤄지는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며 “(위드 코로나 전환은) 예방 접종이 확대되고 입원율과 중증화율, 사망률이 떨어질 때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위드 코로나라는 단어가 방역 긴장감 완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단계적 일상 회복’ 등의 용어를 쓰고 있다.

마스크 벗기를 염원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시기 역시 빨리 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내 마스크 착용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실내 마스크 착용은 제일 마지막까지, 더 안전해질 때까지 지키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드 코로나로 전환되면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것을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확진자 대신 위중증 환자나 사망자만 관리하자는 얘기다. 이에 대해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확진자가 늘면 그 가운데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 수도 함께 늘 수밖에 없다”며 “확진자 수를 줄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처럼 매일 신규 확진자 수를 ‘생중계’하는 방식은 고민해 보자는 지적이 나온다. 김 교수는 “지금처럼 일일 신규 확진자 수를 계속 발표하면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데 정부는 뭘 하느냐’는 의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중환자나 사망자 수는 매일 발표하고 확진자 수는 일주일에 한 번만 발표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10월 말부터 위드 코로나 적용을 검토할 예정이다. 다만 ‘9월 방역 상황이 적정하게 안정화될 때’를 전제 조건으로 달았다. 이달 초중고교 개학과 대학 개강, 추석 연휴 등이 포함되는 만큼 앞으로 한 달 동안이 위드 코로나 전환의 중요한 고비라는 얘기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위드 코로나#각양각색#사회적 합의#한국형 위드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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