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운동장 만들고 선수로 직접뛰는 플랫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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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 독점사이, 플랫폼 기업의 길을 묻다]〈2〉시장정보 쥐고 불공정 게임
자체 사업까지 나서 ‘시장 지배자’로… 與 ‘플랫폼 갑질 방지법’ 연내 입법


“고객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나를 돕는 동반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직접 프랜차이즈 운영에 나서더니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하더군요.”

서울 강북 지역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이진환(가명) 씨가 9일 야놀자, 여기어때 등 숙박 플랫폼을 통한 예약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강북 지역에서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이진환(가명) 씨가 9일 야놀자, 여기어때 등 숙박 플랫폼을 통한 예약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강북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이진환(가명·38) 씨는 “5년 전 영업을 시작했을 땐 고맙게 느껴졌던 숙박 플랫폼이 이젠 좀 두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느 순간 주변 숙박업소가 하나둘씩 숙박 플랫폼과 계약한 프랜차이즈로 바뀌었다”며 “그들이 플랫폼에서 할인쿠폰을 뿌리는 등 적극적으로 영업을 하니 당해 낼 재간이 없다”고 했다.

플랫폼을 통해 사업을 하는 자영업자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시장이 플랫폼 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와 공급자의 거래를 중개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체 사업을 통해 직접 ‘선수’로 뛰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 숙박 플랫폼 기업인 야놀자는 자회사를 통해 프랜차이즈 호텔 운영, 키오스크 서비스, 인테리어 시공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숙박 비품 유통업체와 객실 관리 시스템(PMS) 운영사도 인수했다. 숙박 및 연관 산업을 수직계열화하면서 기존 숙박업소의 경쟁자로 나선 것이다.

업주들은 숙박 플랫폼이 자사 프랜차이즈를 차별적으로 우대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 씨는 “숙박 플랫폼에 광고료를 내는 대가로 할인쿠폰을 받는데 우리에겐 정작 원하는 시점에 배분할 권한이 없다”며 “반면 숙박 플랫폼은 우리 객실 운영 상황을 꿰고 있어 영업 경쟁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용자 정보 등 데이터를 독점하는 플랫폼에 대한 종속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의 숙박업주 김모 씨(55)는 “지난해 숙박 플랫폼 영업팀에서 찾아와 주변 모텔 리스트를 쫙 펼치더니 ‘이 업소는 얼마를 광고해 매출이 얼마나 늘었다’면서 구체적인 액수까지 제시하더라”며 “다른 업소의 매출 정보를 광고 영업에 이용하는 걸 보니 우리 업소의 데이터를 이들이 어떻게 활용할지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과거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불공정 거래 관행도 플랫폼 기업과 입점업체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 입점업체에 불리한 약관을 적용하는 등 ‘기울어진 운동장’이 재연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같은 문제를 겨냥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등 이른바 ‘플랫폼 갑질 방지법’을 올해 내에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숙박예약 틀어쥔 플랫폼이 호텔 운영, 비품도 팔아”
야놀자, 자회사 통해 인테리어 시공… 숙박업계 “사실상 프랜차이즈 영업”
쿠팡, 유통 중개때 자체 브랜드 띄워… 가격-제품 노출 등 유리한 고지 차지
‘혁신’ 내세우며 성장한 플랫폼, 불공정 행위 적발되는 사례 늘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플랫폼 경제, 을(乙)과의 연속 간담회’에 참석한 숙박업소 업주들은 숙박 플랫폼의 상품 판매 구조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다시 방문한 고객에게 쿠폰을 지급하는 ‘무한쿠폰룸’ ‘포인트룸’ 등의 상품은 업주들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수익 배분 구조가 복잡하다고 했다.

서울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이진환(가명·38) 씨는 “일반 숙박업소의 영업 상황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공실이 많다 싶으면 쿠폰 영업을 제안한다”며 “플랫폼이 제안한 대로 한 뒤 나중에 정산해 보면 결국 우리한테는 별로 남는 게 없고 플랫폼에만 수익이 돌아가는 방식이었다”고 했다.

○ 데이터 손에 쥔 플랫폼, 자체 브랜드로 영업

쿠폰은 숙박 플랫폼이 숙박업소들을 상대로 광고 영업을 하는 핵심적인 요소로 꼽힌다. 숙박업소가 광고료를 내면 고객 할인쿠폰을 할당받지만 쿠폰을 운영하는 방식은 숙박 플랫폼의 손에 쥐어진다. 이 씨는 “플랫폼에 잘 노출되기 위한 광고와 업소 상황에 맞는 할인쿠폰 적용 방식 등이 가장 중요한 마케팅 수단인데 이를 결정하는 것은 플랫폼”이라고 했다. 광고료를 내고 있지만 광고 노출 방식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도 세세하게 알기 어렵다는 불만도 나온다.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시장 점유율을 13%까지 키운 쿠팡도 숙박 플랫폼과 같은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곰곰’(식품)과 ‘탐사’(생수) 등 다양한 자체 브랜드를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는데 그동안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격 책정이나 제품 노출 등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주부 김윤서 씨(40)는 “쿠팡의 ‘곰곰’이 거의 동일한 다른 제품보다 조금이라도 무조건 싸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복잡하게 고를 것 없이 ‘곰곰’으로 검색해서 산다”며 “검색하면 제일 눈에 띄는 곳에 노출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접근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쿠팡이 지난해 7월 출범시킨 ‘CPLB’는 지난해 1331억 원의 매출과 15억여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CPLB는 쿠팡에서 자체 브랜드를 전담하는 기존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설립한 회사다.

○ 곳곳에서 불공정 행위로 철퇴
혁신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면서 등장한 플랫폼 기업이 입점 업체에 불리한 약관을 적용하는 등의 불공정 행위도 적발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월 쿠팡이 ‘아이템위너’ 제도를 운영하며 다른 판매자의 상품 사진, 정보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이용약관을 불공정 거래 행위로 판단했다. 아이템위너 제도는 온라인 판매자 중 가격, 배송 기간 등에서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제품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노출되도록 하는 쿠팡의 자체 정책이다. 공정위는 대표 판매자 외에 다른 입점 업체가 올린 콘텐츠를 제한 없이 쓸 수 있도록 보장한 조항 등을 삭제하도록 시정 조치했다.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숙박업체와 서비스 계약 체결 과정에서 할인쿠폰 발급 및 광고상품 노출 기준 등의 정보를 계약서에 기재하지 않은 사실이 공정위 점검에서 적발됐다. 또 숙박업체가 플랫폼을 통해 이용하고 있는 광고 서비스의 기본적인 가격, 노출 기준, 쿠폰 발급 현황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편 야놀자 측은 “로열티를 받는 프랜차이즈 사업이 아니라 브랜드 판권만 파는 브랜드 호텔을 운영하고 있다. 비품 판매를 하고 있지만 여러 판매자 중 한 곳일 뿐”이라고 밝혔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김성모 기자 mo@donga.com
#기울어진 운동장#플랫폼 갑질#불공정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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