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시인[이준식의 한시 한 수]<125>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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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매미 날지 못하고 내 손바닥으로 들어온다.

날개 찢겨도 아직은 가벼이 날 수 있고, 고통스러운 울음이지만 더없이 청아하다.

꽃이슬 배 속에 가득하지만, 티끌이 잘못하여 눈동자를 찔렀구나.

꾀꼬리며 솔개가 한데 어울려, 너를 해치려 마음먹고 있네.

(病蟬飛不得, 向我掌中行. 折翼猶能薄, 酸吟尙極淸. 露華凝在腹, 塵點誤侵睛. 黃雀幷鳶鳥, 俱懷害爾情.)


병선비부득, 향아장중행. 절익유능박, 산음상극청. 노화응재복, 진점오침정. 황작병

연조, 구회해이정.



―‘병든 매미(병선·病蟬)’ 가도(賈島·779∼843)

높은 곳에서 맑은 이슬 먹으며 낭랑한 소리를 뽑기에 매미는 곧잘 세상의 혼탁에서 저 홀로 고결한 존재로 비유된다. 시인의 손바닥에 기어든 병든 매미, 날개는 찢기고 울음소리는 씁쓰름하다. 티끌에 눈동자가 찔리는 바람에 이젠 맘대로 날지도 노래하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자신의 타고난 재주는 아직 건재해서 가벼이 날 수 있고 청아한 소리도 낸다. 뱃속은 꽃이슬로 가득 찼으니 그 심성은 또 얼마나 정갈하고 향긋할 것인가. 한데 제대로 재능 발휘를 못하는 이 불우한 상황에서 바야흐로 꾀꼬리, 솔개의 위협을 받고 있다. 병든 매미를 자신의 처지에 견주려는 의도는 어찌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발상일 테지만, 매미보다 크다고 해서 다 해코지의 상대라 단정할 수 있을까. 마지막 구절엔 얼핏 시인의 과장된 피해의식이 엿보인다.

시작에 자신만만했던 가도는 과거에 낙방하자 조정 실권자를 대놓고 비판하는 시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가도는 과거를 관장하던 예부(禮部)로부터 ‘고사장 패악자’의 하나로 몰려 10년 이상 응시자격을 박탈당했다. 당대의 문장가 한유(韓愈)만은 맹교(孟郊)가 죽은 후 ‘하늘은 문장이 완전히 끊어질까 두려워, 다시금 가도를 인간 세상에 내놓았지’라고 칭송했으니, 스승으로부터는 도탑게 인정받은 셈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불운의 시인#병든 매미#과장된 피해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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