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유머 소재로 쓰고 “과몰입 말라”는 유튜버…누리꾼 “무지하다” 뭇매

  • 동아닷컴
  • 입력 2021년 9월 9일 11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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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촬영을 유머 소재로 활용한 유튜버. 사진=유튜브 채널 ‘크레이지 그레빠(CRAZY GREAPA)’
불법 촬영을 유머 소재로 활용한 유튜버. 사진=유튜브 채널 ‘크레이지 그레빠(CRAZY GREAPA)’
한 유튜버가 불법 촬영을 유머 소재로 활용해 유튜브 영상을 제작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되고 있다. 다수 외신에서 한국의 불법 촬영 범죄를 ‘몰카(molka)’라는 단어로 소개하고 한국을 “불법 촬영의 진원지”로 보도하는 등 불명예를 안은 가운데, 범죄를 유머로 소비한 유튜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4일 유튜브 채널 ‘크레이지 그레빠(CRAZY GREAPA)’에는 “15초 슬픈 영화 ‘판사님 저는 억울합니다’”라는 제목의 짧은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에서 한 남성은 길을 걸으며 핸드폰을 하던 중 지나가던 행인과 어깨를 부딪혀 핸드폰을 떨어뜨린다. 그는 떨어지는 핸드폰을 잽싸게 받아낸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핸드폰 카메라가 켜지며 자신의 앞에 있던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자 남성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인다. 화난 여성의 얼굴 뒤로 철창을 잡고 있는 남성의 손이 나오며 그가 처벌받는 것을 암시한 채로 영상은 끝이 난다.

영상을 접한 시청자들은 범죄 행위를 유머 소재로 활용한 유튜버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불법 촬영을 비꼬기 위한 ‘블랙 코미디’로 볼 수도 없으며 단순히 유머를 위해 범죄를 소재로 활용했다는 것. 한 누리꾼은 해당 영상에 “불법 촬영으로 인생이 망가진 여성분들이 많은데 이 소재가 이렇게 유머로 소비되다니. 만드신 분이 얼마나 여성인권에 관심이 없고 무지한지 알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에 유튜버는 해당 댓글을 상단에 고정한 뒤 “여성 인권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별생각 없이 만든 영상에 과몰입 하지 맙시다”라며 “불편한 거 하나하나 신경 쓰니까 TV방송이 노잼이 되는 것이다. TV예능 보러 가라. 여기는 방송국이 아니라 유튜브 개인 채널이니까”라고 맞받아쳤다.

이 같은 사실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누리꾼들은 “별생각 없다는 게 더 충격이다”, “본인은 몰카(몰래카메라)를 당할 일이 없으니 별생각 없이 살겠지”, “사회 분위기가 바뀐 걸 모르나 보다”, “molka의 나라답다. 생각 없이 만든 게 자랑이냐”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로이터 “한국, 몰카의 진원지”…‘molka’ 단어 소개되기도
실제 지난 5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의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2020년 불법 촬영 검거 건수는 4744건으로 2011년 1344건 대비 3.8배 증가했다. 또 2020년 불법 촬영 검거인원은 5151명이며, 이들 중 남성은 94.1%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지난 6월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한국 사회에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를 꼬집기도 했다.

HRW는 “2008년에는 한국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건 중 불법 촬영 관련 사건이 4% 미만이었으나 2017년에는 6615건으로 11배 증가하면서 전체 성범죄 사건의 20%를 차지했다”며 “몰래카메라 피해자의 80%가 여성이며 가해자의 대다수는 남성이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기술 발전에 비해 성 평등은 발전하지 못했다”며 “정부 대응에서는 핵심적으로 디지털 성범죄가 생존자들에게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돼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해당 보고서와 관련해 “한국은 몰래카메라의 세계적 진원지(global epicentre of spycam)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 프랑스24 등 다수 외신에서는 한국의 불법 촬영 범죄와 관련해 영단어 ‘spycam’ 대신 ‘몰카'(molka)’라는 한국어 단어를 사용했다. 해당 단어는 위키피디아에 영문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보고서 작성자인 헤더 바 HRW 여성권리국 국장은 “한국에서는 디지털 성범죄가 너무도 만연하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모든 여성과 여아들이 영향을 받고 있다”며 “근본 원인은 여성과 여아에 대한 유해한 사고와 행동이 널리 수용되는 현실에 있으며 한국 정부가 이에 시급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혜린 동아닷컴 기자 sinnala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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