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 같았던 화가[이은화의 미술시간]〈179〉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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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카유보트 ‘이에르, 비 효과’, 1875년.
귀스타브 카유보트 ‘이에르, 비 효과’, 1875년.
용혜원 시인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날은 사랑에 더 목마르다”고 했다.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카유보트는 그림에 더 목말랐던 듯하다. 그는 비 오는 날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빗방울과 강물을 사랑했고, 뱃놀이를 즐겼다. ‘이에르, 비 효과’는 그가 사랑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파리에서 부유한 사업가의 맏아들로 태어난 카유보트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화가가 되었다. 26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받은 막대한 유산 덕에 평생 여유로운 생활을 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27세 때 그린 이 그림 속 배경은 이에르 강가다. 이에르는 파리의 외곽 도시로 예부터 귀족들과 부르주아, 예술가들의 휴양지로 인기 있던 지역이었다. 카유보트가 12세 때 그의 아버지는 이에르 강기슭에 땅을 사서 저택을 지었다. 파리에 살던 그의 가족들은 매해 여름을 이곳에서 보냈다. 물놀이와 뱃놀이를 하면서. 카유보트는 이곳에서 그림 80여 점을 완성했는데, 이 그림은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시골 풍경화다.

카유보트는 인상파의 주요 멤버였지만 생전에는 화가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친한 동료들조차도 부유한 아마추어 화가로 여겼다. 하지만 사실주의를 기반으로 한 그의 인상주의 그림은 여러모로 남달랐다. 그림 속에는 빗방울이 강물에 떨어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포착돼 있다. 마치 화면 속에서 우두두 떨어지는 빗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멀리 보이는 나룻배 한 척이 낭만을 더한다. 스냅 사진에서 따온 과감한 대각선 구도와 인물을 완전히 제거한 풍경화는 그에게 큰 도전이었다.

카유보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컬렉터이기도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인상파 화가들을 후원했다. 전시를 열어주고, 집세를 내주고, 그림을 사들여 생활고를 해결해 주었다. 46세로 세상을 떠날 땐 자신이 수집한 동료 화가들의 작품을 모두 국가에 기증했다. 목마른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그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마치 그의 그림 속 빗방울처럼.



이은화 미술평론가



#단비#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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