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부장-임원에 위기감이…회사에서 나만 그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8일 13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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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박 PD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박 PD

“해당 직무 경험이 없는 관리자가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지 못하고 부하직원을 애먹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활동명 이 과장·39)

“이 과장이 한번 부장 돼 봐….”(김 부장·48)

‘김 부장’이 ‘이 과장’에게 조용히 던진 한 마디에 일순간 멤버들의 박장대소가 터졌다. 이 과장이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것보다 차라리 아랫사람한테 도와 달라, 같이 하자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상사가 더 믿음직하다”고 부연하자 김 부장도 이내 “맞다. 관리자도 새로 맡은 직무라 모를 수 있다는 게 공유되고 나면 일이 더 잘 풀리더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이 어떻게 부장 있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같은 회사에 다니는 이들이 아니니 걱정 내려 놓으시라. 이들은 2018년 2월부터 팟캐스트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을 진행하고 있는 ‘언슬조’ 멤버들이다. 2016년 한 독서모임에서 우연히 서로의 고충을 나누다 보니 나이도, 직급도, 고용 형태도 전부 다른 여성 직업인 6명이 모이게 됐다. 김 부장, 신 차장(활동명·40), 이 과장, 문 대리(활동명·35), 박 사원(박주현·31)이 팟캐스트 제작을 맡은 박 PD(박성미·42)의 지휘 아래 그렇게 모였다.

이들은 1일 자기계발서 ‘회사에서 나만 그래?’(콜라주)를 펴냈다. 여성 직업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26가지 문제를 엄선해 현실적인 답을 담았다. 7일 김 부장과 이 과장, 박 사원, 박 PD를 줌 화상회의로 만났다.

“직장 상사의 ‘갑질’에 아주 힘들어 하시던 청취자가 ‘수렁에 빠진 신입사원에게 한 줄기 희망과 같은 방송이다’라는 반응을 남겨주신 적이 있어요. 그런 소감을 전해주실 때마다 큰 보람을 느껴요.”(박 PD)

3년 반을 넘긴 팟캐스트는 어느새 164회를 맞았다. 이쯤 되면 직업인으로 살며 맞닥뜨리는 거의 모든 문제를 다뤘을 법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언니들’도, 청취자들도 고민이 계속해서 변한다고 한다. 과거 김 부장과 또래 청취자들은 남성 위주의 계급 사회에서 소수파로 살아가는 데서 오는 고민이 컸다면 지금 이들의 고민은 ‘80년대생이 온다’라고. 김 부장은 “여성 관리자로 살며 남성 동료들보다 늘 위기감이 컸는데, 이제 80년대생 부장, 임원이 슬슬 생기니 그 위기감이 훨씬 가중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박 사원
언니들의 슬기로운 조직생활’ 박 사원
젊은 세대의 고민도 달라졌다. 박 사원은 “제 또래인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 대신 다른 선택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쉽게 선택을 감행하지는 못하는 단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간관리자 급인 이 과장은 “신입 사원들은 텍스트보다 영상 매체가 익숙한 세대라 그런지 보고서를 보면 구어체가 마구 등장해 당황스럽다. ‘형식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니 지적하지 말까’ 생각하다가도 ‘이러다 보고서를 틱톡으로 받게 되는 것 아닌가’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며 웃었다.

이들은 ‘언슬조’가 답을 가진 곳이 아니라, 답을 함께 고민하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청취자의 고민을 다른 청취자가 해결해 줄 때 보람이 크다고 한다. 이들은 24일 오후 7시 최인아 책방에서 열리는 온라인 저자 북토크를 통해 1년 여 만에 청취자들과 생방송으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요새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신세대의 라이프 스타일이다. 기존의 논의가 조직생활에 쏠려 있었다면 이를 퇴사 이후의 삶, 싱글 직업인의 모습 등 전반적인 삶의 양태로 확장해보자는 것.

“지금 젊은 세대들이 조직을 이해하고 있는 방식대로 조직과 사회가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좀더 젊은 직업인들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게 저희의 다음 목표입니다.”(박PD)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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