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가 좋았지[간호섭의 패션 談談]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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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벨 에포크 패션

피에르빅토르 갈랑 ‘막심의 바’, 1890년경.
피에르빅토르 갈랑 ‘막심의 바’, 1890년경.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벨 에포크(Belle Epoque)는 불어로 ‘아름다운 시절’을 뜻합니다. 시기적으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로 정확히는 1871년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충돌했던 보불전쟁(普佛戰爭)이 끝난 때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의 평화로운 시기입니다.

이 전환기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교통과 통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여기에 문학 음악 미술 등 예술이 시간적 여유가 생긴 사람들의 감성을 충족시켜 주며 그 삶을 향유하기 시작했습니다. 백화점이 생겨 다양한 물건들을 구입하고, 바캉스 문화도 생겨나 구입한 물건들을 사용하며 여행을 하고, 사진과 영화를 통해 여행을 기록하며 추억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문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타이타닉’으로 알려진 대륙간 호화 여객선입니다. 여객기가 없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한달 여 기간동안 갑판 위 수영장과 선상 카페에서 말 그대로 ‘아름다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의상이 빠질 수가 없죠.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오후 티 타임, 저녁 만찬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격식에 맞는 의상이 요구 되었습니다. 게다가 오랜 기간 여행을 하는 관계로 계절에 맞는 의상도 필요 했습니다. 겨울의 한파를 피해서 따뜻한 곳으로 가기도 하고, 대륙 횡단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현재 봄/여름과 가을/겨울 정기 컬렉션 사이 공백을 메우는 크루즈(Cruise) 컬렉션은 바로 이 벨에포크 시대 크루즈 여행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여성의 의상은 한층 심플해지고 가벼워졌지만, 우아함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 전 시대를 지배했던 커다란 스커트 받침대 크리놀린과 엉덩이 뒤쪽에 남아있던 조그마한 받침대인 버슬 마저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스커트는 부피가 적어진 대신 흐르는 듯 물결치는 유연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펄럭이는 스커트 자락은 아래로 갈수록 퍼져, 인어의 지느러미처럼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에서도 벨에포크 시대가 나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남자주인공 ‘길’은 자신이 동경하는 1920년대로 시간이동을 하여 헤밍웨이, 달리, 피카소 등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정작 1920년대에 살고 있는 피카소의 여자친구인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의 벨에포크 시대를 동경합니다. 이렇듯 우리 모두에게는 현실이 힘들고, 도피하고픈 ‘아름다운 시절’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아름다운 시절’도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벨에포크 패션도 아름다운 시절의 아름다운 의상이기도 하지만 바닥까지 끌리는 길이의 드레스로서는 마지막 패션이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의상처럼 무릎길이 드레스가 보편화 됐으니까요. 그렇기에 아름다운 의상은 그때가 좋았지라는 의미를 가진 예전의 고증의상이 아니라 현재 내가 속한 시대에 내게 어울리는 의상일 듯합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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