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민주성 한계 가진 여론조사 경선[동아광장/한규섭]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입력 2021-09-07 03:00수정 2021-09-07 03:00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여론의 ‘추정값’, 결과 승복 어렵게 해
비밀투표 불가·조작 시도에도 취약
조사 불신해온 정치권, 경선 활용은 모순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여론조사를 활용한 경선의 역(逆)선택 문제를 둘러싸고 극심했던 야당 내 갈등이 국민의힘 선관위의 절충안으로 일단 봉합된 모양새다. 그러나 사실 여론조사 경선은 그 자체가 비민주적이다. 2014년 봄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당시 새누리당이 제6회 지방선거의 7개 광역자치단체장 경선에 ‘100% 여론조사’ 방식을 도입하는 문제를 놓고 내부 갈등이 첨예했다. 8년이 지난 지금 아무것도 개선된 게 없다. 경선이 시작된 뒤에서야 역선택 문제만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가 수습됐지만, 차후 여론조사 방식을 두고 갈등의 불씨는 여전하다.

우선 “역선택도 해당 정당 후보를 선택한 소중한 표”라는 일각의 주장은 역선택의 정의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역선택을 한 유권자들은 애초에 본선에서 해당 후보를 찍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는 유권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확장성’과도 관련이 없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도 대다수의 주에서는 오픈 프라이머리 제도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한 유권자가 모든 정당의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여론조사와 성격이 유사한 ‘일괄형 예비선거(blanket primary)’는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주에서 각각 2000년과 2003년 위헌 결정을 받았다. 미국 헌법은 단체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며, 경선에서의 투표는 표현의 자유의 일부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경쟁 정당 지지자들의 역선택은 단체결사의 자유, 더 나아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로 다른 여론조사들의 결과와 동떨어진 경선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경우 이를 토대로 선출된 후보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선출된 후보를 본선에서 찍어 달라고 호소할 수 있을까.

주요기사
역선택 문제가 아니더라도 여론조사 경선은 비민주적이다. 여론조사는 실제 여론의 ‘추정값’을 제공할 뿐이다. 필연적으로 실제값과는 확률적 오차가 있다. 만약 여론조사 경선에서 경쟁 후보와의 격차가 오차 범위 이내라면 결과에 승복해야 할 객관적 근거는 없다. 탈락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또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특히 현재와 같이 여론조사 결과가 중구난방인 상황에서는 누구도 결과에 승복하기 어렵다. 유력 후보들의 지지율이 조사마다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고 있다. 면접조사와 자동응답방식(ARS), 유·무선 비율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유·무선이나 면접조사와 ARS 혼합 비율에 대한 과학적 기준은 없다. 면접조사가 ARS보다 무조건 좋을까? ‘숨는 현상’이 심할 경우 오히려 ARS의 오차가 면접조사보다 작을 수도 있다. 여론조사 방식을 놓고 합의가 불가능할 경우, 조사를 수행하는 업체에 이 결정을 ‘용역’ 주면 될까.

여론조사 경선은 기본적인 선거 원칙에도 벗어난다. 여론조사 응답자는 조사원에게 지지 후보를 밝힐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비밀투표’가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또 모든 유권자가 유선전화 또는 휴대전화를 소유해야 할 의무도 없다. 원천적으로 보통·평등 선거가 될 수 없다.

심지어 여론조사 경선은 조작 시도에도 취약할 수 있다. 2012년 4·11총선을 앞두고 서울 관악을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이정희 후보 비서진이 조직적 전화 가입과 착신 전환을 통해 이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려고 시도한 것이 발각되어 통진당 지지층 붕괴의 시발점이 되었다. 민주당도 박근혜 정부 시절 지지율 하락에 다급해진 나머지 당대표 선거에 모바일 투표를 도입했다가 선거 부정이 드러나며 지지율이 10% 초반대로 곤두박질치는 도화선이 된 적도 있다. 현재 경선에서 여론조사 활용을 고려 중인 모든 정당에서 되새겨 볼 사례들이다.

현재 정당들이 벤치마킹 중인 미국의 상향식 공천 제도는 1968년 민주당의 ‘피의 시카고 전당대회’ 이후 도입되었다. 당시 민주당은 유권자들이 뽑은 후보 대신 당 지도부와 친밀했던 현직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가 민주당 지지자와 경찰 간 유혈 충돌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험프리 후보는 본선에서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에게 완패했다. 이후 모든 주에서 순차적으로 지금의 예비경선제가 도입됐다. 후보 선출에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때 어떤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야 모두 그동안 여론조사를 불신하는 시각을 숨기지 않아 왔다. 그러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대통령 선거에서는 여론조사로 자기 정당의 후보를 정하는 것은 모순적이기 짝이 없는 상황이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비민주성#한계#여론조사 경선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