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종석]‘우리는 이렇게 될 거라 얘기했다’는 펜타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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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철군, 무를 수 없는 결정이었어도
철군 과정엔 국방부 목소리 새겨들었어야

이종석 국제부장
이종석 국제부장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끝낸 이틀 뒤인 1일(현지 시간).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국방부 청사(펜타곤)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둘은 회견 내내 무겁고 침통한 얼굴이었다. 밀리 의장은 오스틴 장관이 기자 질문에 답하는 동안 잠시 눈을 감은 채로 있기도 했다. 전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서 아프간 철군을 두고 “놀라운 성공”이라고 했던 평가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탈출을 원한 미국인 중 90% 이상이 아프간에서 빠져나왔다는 점 등을 언급하면서 이런 평가를 내놨다. 하지만 철군 막바지에 이슬람국가(IS)의 자살폭탄 테러로 미군 13명 등 최소 170명이 사망했다. 미군의 IS 공습 과정에서 어린이 8명이 포함된 일가족 10명도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이렇게 될 거라 얘기했다(We told them so).’ 펜타곤에서 이런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고 한다. 철군을 성급하게 밀어붙이면 아프간에서 지금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백악관에 미리 알렸다는 것이다. ‘그러게 우리가 뭐랬어’ 정도의 말로 들린다. 철군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서둘지 말고, 철군하더라도 병력 일부는 한동안 남겼어야 했다는 얘기다. 오스틴 장관과 밀리 의장도 ‘아프간 완전 철군’에 반대 의견을 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듣지 않았다.

오스틴 장관은 중동지역 작전을 책임지는 중부사령관을 2013년부터 3년간 지냈다. 아프간이 중부사령관 관할이다. 미군 서열 1위 밀리 의장은 아프간전쟁에 세 차례 파병됐다. 2003년 산악사단 여단장, 2008년 공수사단 작전부사단장, 2013년엔 다국적 연합태스크 사령관으로 파병돼 작전을 지휘했다. 산악사단은 철군 막판까지 부대원 일부가 카불 공항에 남아 임무를 수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바이든의 ‘국무부 편향’과 ‘국방부 견제’가 이유 중 하나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대통령들은 집권 초기 미국의 힘을 다져 나가는 과정에서 국무부나 국방부 둘 중 한 곳에 상대적으로 많은 힘을 실어줬고 이 때문에 두 곳은 오랜 기간 라이벌 관계처럼 돼 있는데 바이든은 국무부에 너무 많이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국무부 출신이다. 윌리엄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33년 경력의 정통 외교관이었다. 외교관 출신을 CIA 국장에 앉힌 대통령은 바이든이 처음이다. 주로 정치인들이 가던 주중국 대사 자리에도 바이든은 국무부 차관을 지낸 외교관 출신 니컬러스 번스를 지명했다. ‘국무부 편향’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바이든이 상원의원 시절부터 국방부를 못마땅해했다는 건 그의 자서전을 봐도 알 수 있다. 국방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부분이 꽤 나온다.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낸 바이든은 외교위원장을 세 차례 맡았다. “바이든의 외교관들에 대한 포용력과 국방부에 대한 경계심은 상원위원장 시절 굳어진(solidified) 것”이라는 미국 언론의 평가도 있다. 과거 그의 머릿속에 고착화한 이미지로 인해 국무부는 무슨 얘기를 해도 그럴싸하게 들리고, 국방부는 어떤 말을 해도 귀에 안 들어온다는 얘기다. 철군 결정은 외교 전략적 차원의 판단이었다고 해도, 철군 과정에서는 실행 주체인 국방부의 전술적 판단을 좀 더 새겨들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이종석 국제부장 wing@donga.com
#미국#아프가니스탄#아프간 철군#펜타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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