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우리 중 40%는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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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쉿 잡/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김병화 옮김/512쪽·2만2000원·민음사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쓸모없는 노동은 있다?

미국의 저명 인류학자이자 경제사회적 불평등을 대담하게 비판하며 명성을 떨치던 저자가 세상엔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는 무의미한 일자리가 전체의 40%에 육박한다는 주장을 들고나왔다. 이러한 일자리를 일컬어 그는 ‘불쉿 잡’이라 칭했다. 불쉿(불싯·Bullshit)은 “쓸모없는” “쓰레기 같은” 등의 의미를 지닌 비속어. 이는 일하는 사람조차 노동의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

여러 경제학자들은 예부터 20세기 말이면 인류가 적은 시간 노동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누리고 살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불쉿 잡은 증가하고 있다. 학자들은 어떤 변수를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책은 이에 대해 파고들며 이 같은 현상이 사회 구성원에 미치는 심리적, 정치적, 문화적 영향을 파헤친다. 저자는 변화의 원인으로 금융자본주의의 성장 그리고 진영 논리와 관계없이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삼는 오늘날 각국 정부의 정책을 꼽았다. 지난 100년간 생산 자동화가 생산직을 대거 없앤 반면 사무직을 급격히 늘려간 점도 한몫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가짜 일’ ‘일만을 위한 일’이 대거 생겨났다고 말한다.

불쉿 잡의 특징은 또 있다. 바로 그 일을 수행하는 당사자가 이 사실을 가장 잘 안다는 것. 저자는 사모펀드 최고경영자(CEO), 광고 조사원, 보험 설계사, 텔레마케터, 컨설턴트 등을 예로 들며 이들이 사라져도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반면 교사, 간호사, 쓰레기 수거 요원, 음악가, 항만 노동자 등이 없어지면 막대한 사회적 파장이 생길 것이라 분석했다.

재밌는 건 이러한 무의미한 일이 쓸모 있는 일보다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고액 연봉,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직업의 위계를 읽어낸다. 이런 주장이 다소 과격한 일반화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확연히 드러났듯, 그의 주장엔 공감할 지점이 적지 않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쓸모 없는 일#노동#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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