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서 첫 선 보인 태권도…WT 총재 “약자 돕는 게 태권도 정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3일 1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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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럴림픽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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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태권도연맹(WT) 조정원 총재(74)가 태권도가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에서 첫 선을 보인 2020 도쿄 패럴림픽 현장을 찾아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태권도 패럴림픽 정식종목 채택은 WT와 조 총재의 숙원이었다. 조 총재는 3일 대회 태권도 경기가 열리는 일본 지바현 마쿠하리 메세홀B에서 “패럴림픽에 태권도가 들어간다는 꿈을 상상하다가 현실이 돼 기쁘다.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태권도는 올림픽, 패럴림픽에 모두 정식종목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기쁘다”면서 “WT 가맹 210개국 숫자와 비교하면 세계적인 (장애인 태권도) 수준은 아직 미비하지만 패럴림픽 이후 붐이 일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태권도는 2015년 1월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집행위원회에서 배드민턴과 함께 패럴림픽 정식 종목으로 이름을 올렸다.

조 총재는 “오늘 주정훈(27·SK에코플랜트) 선수의 첫 경기(패배)를 봤지만 아무래도 경험이 적어서 그런 것 같다. 한국이 종주국임에도 뒤늦게 출발한 것 같지만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태권도 종주국의 힘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정훈은 이번 패럴림픽 태권도에 출전한 유일한 한국 선수다. 패자전을 거쳐 동메달을 노린다.

패럴림픽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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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와 조 총재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아프가니스탄 태권도 선수 자키아 쿠다다디(23)와 관련이 있다. 지난달 아프간 수도 카불을 떠나 도쿄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쿠다다디는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발길이 묶였다. 쿠다다디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고, IPC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 노력으로 프랑스 파리를 거쳐 도쿄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WT와 현지 사정에 밝은 태권도계 인사들이 도움을 줬다. 조 총재는 “WT는 어떤 단체보다 앞장서서 난민, 어려운 국가의 선수들을 지원하는 최전선에 섰다. 2016년 태권도박애재단을 설립했고, 태권도 케어스(cares) 프로그램을 운영·지원하며 각지에 있는 난민, 유소년에게 태권도를 통해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힘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프간 사태 이후 쿠다다디 선수와 육상 선수(호사인 라소울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봤다. 특히 태권도 선수가 포함돼 있었다”며 “‘그들이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쿠다다디가 ‘도쿄 패럴림픽에 꼭 출전하고 싶다’는 동영상을 올렸는데 우리 역할은 작은 부분이었지만 기꺼이 나서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관련 인사들의 사정을 고려해 쿠다다디, 라소울리가 카불을 떠나 도쿄에 도착하기까지 자세한 절차, 내용 등은 공개하지 않았다.

쿠다다디가 경기를 치른 2일 앤드류 파슨스 IPC 위원장은 조 총재를 찾아 감사 인사를 전했다. WT는 쿠다다디에게 이름을 새긴 연맹 블랙벨트를 선물로 건네며 격려했다.

조 총재는 “쿠다다디는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에 출전했던 선수다. 나이는 어리지만 장래가 기대되는 선수”라며 “어린 선수가 고통, 고뇌, 긴 여정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심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고 했다.

이어 “태권도 정신이라는 게 약자를 돕고, 평화를 인식시켜주는 일이라고 본다면 당연히 할 일을 했다고 본다”며 “태권도를 통해 난민, 유소년, 고아, 재소자 등을 도우면서 꿈과 희망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해야 한다. 태권도가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건 곧 대한민국, 우리나라에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이다”고 했다.

약자에 대한 배려, 양성 평등처럼 WT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잘 드러난 장면이 올림픽과 패럴림픽 남녀 심판 숫자다. 남녀 심판을 각 15명씩 똑같은 숫자로 배정한다.

조 총재는 “2016 리우 대회 때부터 남녀 심판의 숫자를 똑같이 하고 있다. 국제 기구로선 최초”라고 강조했다.

조 총재는 다음 달 화상으로 진행하는 총재 선거에 단독 출마했다. 사실상 2025년까지 세계 태권도를 이끌어 갈 게 유력하다. 2004년 고 김운용 전 총재 뒤를 이어 총재에 취임한 조 총재는 잔여 임기 10개월을 수행한 뒤 2005년, 2009년, 2013년, 2017년 차례로 연임에 성공했다.

조 총재는 “태권도가 세계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올림픽 종목 중 회원국 수가 랭킹 5위 안에 들 정도 규모가 됐다”면서 “이제는 태권도가 사회에 기여하는 스포츠,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올림픽 잔류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존중받는 스포츠 기구로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태권도가 다이나믹하고, 재미있으면서도 사회에 더 많이 기여하는 스포츠라고 인식될 때, 비로소 올림픽과 패럴림픽 스포츠로서 길이 남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황규인기자 kini@donga.com·패럴림픽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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