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기용]中공산당, 규율과 국민생명 뭐가 더 중요한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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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292명 사망, 정저우 당서기 징계 안 해
알리바바 친한 항저우 당서기는 하룻밤에 낙마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는 22개 성(省)이 있다. 한 개 성의 면적은 대체로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넓고, 인구가 많은 곳은 1억 명이 넘는다. 성 하나가 웬만한 나라 하나와 비슷한 셈이다. 이렇다 보니 성의 수도인 성도(省都)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주목받는다. 중국 중부 허난성의 성도 정저우(鄭州)시와 동남부 저장성의 성도 항저우(杭州)시도 마찬가지다. 정저우나 항저우 같은 성도에서 공산당 서열 1위 당서기는 아무나 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이들에 대한 징계나 처벌도 원칙과 기준 없이 함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8월 초 정저우에는 하루에 1년 치 강우량을 뛰어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당국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이로 인해 정저우 내에서만 292명이 숨졌고, 인근 지역 사망자까지 포함해 총 302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정저우에서는 지하철 5호선의 배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폭포수 같은 빗물이 지하철 객차 안까지 밀려들면서 1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지하철 객차 내 익사’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정저우시는 인구 약 1260만 명에 지역내총생산은 1조2003억 위안(약 216조7382억 원)에 이르는 대도시다. 지역내총생산만 놓고 볼 때 서울(약 436조 원)의 절반 수준이며, 부산(약 93조 원)보다는 2배가 훨씬 넘는다. 결코 허술한 도시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곳에서 ‘지하철 익사’로만 12명이 사망했고 총 3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정저우시 공산당 서열 1위인 쉬리이(徐立毅·57) 당서기는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명만 발생해도 당서기부터 문책한 중국 공산당의 분위기와 크게 다르다. 29일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쉬 서기의 동정을 소개하며 물난리 후속 대책회의에서 그가 “관련 업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을 엄중하게 문책하고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기(21일) 인구 약 1194만 명인 대도시 항저우는 발칵 뒤집혔다. 그동안 승승장구해 온 저우장융(周江勇·54) 항저우시 당서기가 전격 낙마한 것이다. 저우 서기는 17∼19일 저장성 대표단으로 신장위구르 지역을 방문했고 20일 오후에도 항저우에서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21일 공산당 규율 위반으로 조사를 받게 됐다.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는 홈페이지를 통해 저우 서기에 대한 조사 사실을 알리면서도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항저우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본사가 있다는 점에서 저우 서기의 낙마가 알리바바 때문일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2018년 항저우 당서기에 부임한 그는 관할 지역에 알리바바가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알리바바와 친했던 인물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 중국 정부를 공개 비판한 이후 알리바바는 공산당에 미운털이 박혔고 이후 저우 서기의 운신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과적으로 292명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정저우 당서기는 건재하고, 구체적인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공산당 규율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항저우 당서기는 자리에서 쫓겨났다. 항저우 당서기가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을 수 있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이 당서기를 내칠 때의 기준은 국민 생명을 지켰는지가 아니라 당 규율을 위반했는지에 두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중국 공산당#규율#국민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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