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언론법, 피해구제보다 비판보도 재갈 채울 것”[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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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위헌 논란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는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왼쪽부터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 김동훈 기자협회장,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변철호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 뉴시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기자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는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다. 왼쪽부터 성재호 방송기자연합회장, 김동훈 기자협회장,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변철호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장. 뉴시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문체위와 법사위를 통과해 국회 본회에서의 처리를 앞두고 있다. 국내외 언론단체와 전문가들, 그리고 여권에서조차 반대하고 있음에도 민주당은 법안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를 목도하면서 도대체 언론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이기에 이렇게 언론을 규제하려는 법안에 집착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소중하게 인식되고 용기 있는 보도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언론자유 보장이 여타 기본권 보장의 초석이 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는 언론의 공적 역할과 가치에 대해 인정을 받았다. 이 점을 감안해 우리 법원도 공적 사안 및 공적 인물에 대해서는 좀 더 자유롭게 보도하도록 하고 현저히 악의적이고 공격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의혹 제기는 오히려 언론의 의무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던 언론에 대한 시각은 언제부터인가 부정적으로 변했고 언론을 ‘규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커지게 됐다. 이 같은 인식이 커진 데는 최근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는 검증되지 않은 유사언론의 부정적 영향력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언론중재법 논란은 이런 상황적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부실한 보도나 오보를 허위조작정보 또는 허위조작뉴스와 구분하지 않은 채 ‘가짜뉴스로부터 개인의 피해 구제’라는 명목으로 추진된 개정안은 피해 구제보다는 언론에 대한 규제의 의도가 강하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개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삽입한 몇몇 세부 규정이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라는 지적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여러 본질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조항들이 피해 구제를 충분히 받도록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실제로 이러한 규정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언론중재제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피해 구제를 법정에서 다투어야 하는데 이는 신속하고 무료로 피해 구제를 원하는 개인들에게 시간적, 금전적, 정신적 손실을 초래하고 동시에 조정 합의 등을 통한 원만한 피해 구제를 더욱 힘들게 만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보도에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다고 인정되면 언제든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도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류가 없는 진실한 사실의 경우에만 보도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진실한 보도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우리 법원은 언론이 보도할 당시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진실로 인정해 주는 ‘진실오신의 상당성 원칙’을 수용하는데 개정법에 따르면 이러한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결국 자연스레 비판적 보도, 의혹 제기 보도, 심층적 보도, 후속 보도, 시사 보도 등에 재갈을 채우는 결과를 낳을 것이며 이는 법익의 형평성 원칙에 위반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고의나 중과실을 ‘입증’하는 게 아니라 ‘추정’할 수 있으면 징벌적손해배상을 구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징벌적손해배상제도의 의의와 상치된다. 실제로 이를 허용하는 영미국가들의 경우 일반인도 공인과 같이 징벌적손해배상을 얻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입증책임(현실적 악의 원칙)을 진다. 이를 객관적인 증거를 통해 입증해야 한다. 이로 인해 2000년 이후에는 징벌적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례가 나오고 있지 않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적 토론에서 때로는 공직자(공인)에 대한 심히 불쾌할 정도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언론이 처벌받게 해서는 제대로 그 역할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현재 미국은 징벌적손해배상제도를 인정하는 대신 명예훼손죄는 사문화됐고 반론권 등을 통한 피해 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니어도 사실·허위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가 아직 존재하고 있고, 피해에 대한 금전적인 보전 외에도 반론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전담하는 부서인 언론중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사전에 피해 예방이 가능하도록 사전금지 청구도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피해 구제 방식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된다. 그런 점에서 징벌적 성격의 피해 구제 규정보다는 현재 조정중재를 통한 피해 구제를 좀 더 원활하게 실행할 수 있는 규정이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정정보도를 일정 크기와 분량으로 하라고 명시적으로 규정으로 것 또한 편집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되며 동시에 정정·반론보도 등을 통한 언론피해 구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이에 대해 우리 법원은 피해가 발생한 규모나 위치, 또는 시간에 동등한 정도로 정정보도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원칙을 따르는 게 물리적으로 어렵거나 피해 구제 의미에 큰 차이가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언론사와 신청인이 합의해 그 범위와 위치, 시간을 정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외국의 경우 피해를 입은 기사 양을 초과해 정정보도를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정보도 집행 방식을 규정한 조항은 과잉금지원칙 위반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열람차단청구권 도입을 명문화하는 것은 현재 포털 플랫폼에 적용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상의 블라인드 조치와 유사한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블라인드 처리는 인터넷상 자극적인 댓글이나 토론문 등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그럴 가능성을 보일 때 플랫폼이 자발적으로 접속을 한 달 동안 차단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정안에서 말하는 열람 차단의 대상은 악플이나 비판적이고 자극적인 주장을 하는 유사언론이 아닌 일반 언론의 ‘기사’이다. 언론 기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이에 대한 접속을 아예 못하게 하는 것은 분명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만약 이를 시행한다면 언론중재위원회에서 피해자와 언론의 합의를 통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리하자면 문제되는 규정은 보도에 의한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대안을 적극 고려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명확성의 원칙이나 형평성의 원칙, 그리고 과잉금지원칙에 위배되거나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이라도 독소조항들을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언론규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경우 우리 언론의 낮은 신뢰도를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사실 언론의 신뢰도는 선진 외국의 경우에도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 신뢰도는 언론의 신뢰도보다 더 낮다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정치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비판하고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서의 언론의 공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법 개정은 우리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언론도 이번을 계기로 성찰이 필요하지만 ‘언론은 공적 영역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적 존재’라는 명제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이재진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언론중재법#위헌 논란#편집권 침해#알권리 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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