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한국의 문신 문화[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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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얼마 전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이민자 작가가 쓴 자전소설을 읽었다. 시대적 배경은 6·25전쟁 전후다. 주인공은 어린시절 자신이 여자로 태어나서 어머니가 불행해졌다고 생각했다. 그걸 핑계로 아빠가 첩을 데리고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책망했다. 이 부분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사고방식, 선입견이 그 동안 얼마나 바뀌었는지 새삼스레 깨달았다. 문신에 대한 여론도 지난 25년 동안 많이 변했다.

1996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문신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최초로 본 문신 중 하나는 강원도 있는 목욕탕에서였다. 덜렁 한자 하나였는데 그때는 한자를 읽을 줄 몰라서 모양을 외워 아는 사람에게 물었다. ‘악할 악(惡)’이었다. 여전히 놀라운 문신이다. 그 문신을 한 사람은 주위 목욕하는 남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1997년 미국인 동료는 여름에 반팔 와이셔츠를 입고 출근할 때 붕대로 감았다. 그에겐 팔뚝에 군인 시절에 새긴 작은 문신이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문신이 불법이라 길을 가다가 경찰에 잡힐까 걱정됐다고 했다.

나는 슬슬 한국에서 문신이 거의 깡패와 가출한 청소년들만 몸에다 새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납득하게 됐다. 1998년 평택 시내버스 안에서 10대 남자 몇 명을 만났을 때 그들은 자랑스럽게 직접 대충 그린 문신을 내게 보여줬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 지하철에서 가출한 것 같은 10대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로 거칠게 문신을 새긴 걸 봤다. 문신 있는 남자는 입대하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텔레비전에 나온 연예인들도 나의 옛 동료처럼 문신을 붕대로 감춘 것을 봤다.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문신을 한 한국인이 말썽꾸러기 또는 사회 부적응자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나에게도 스며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문신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문신을 거리낌 없이 노출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회사원, 아이 부모, 연예인, 심지어 최근엔 정치인도 나타났다.

호주에서 자랄 때 봤던 문신과 비교하면 한국은 ‘보디 아트’ 방식이 다르다. 호주의 90년대 문신은 소위 ‘트라이벌(Tribal·부족) 디자인’이 인기가 많았다. 그리고 2000년대 초에는 멜버른에 있는 거의 모든 식당에서 서빙하는 여자들이 짧은 상의와 바지사이 허리에 문신을 하는 게 유행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요즘 한국에서는 필기체 서체 또는 목판 글자 인기가 더 높아 보인다. 한글은 물론 영어, 라틴어, 아랍어 심지어 히브리어로 쓰인 이름, 구호(예를 들면 “까르페 디엠”) 아니면 노래 가사 등이 유행이다. 그리고 젊은 한국인들은 문신을 보이는데 자신감이 넘쳐 난다.

과거에 문신이 남성 소유물이었다면, 지금은 많은 여성들이 쇄골, 어깨뼈, 손목, 손가락 등에 문신을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주 버스 안에서 다섯 살쯤 되는 아들을 데리고 가는 아이엄마를 봤는데 문신이 4~5개가 있었다. 요즘 문신이 증가하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놀랐다. 아마 나도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눈썹 문신은 지난 몇 년간 인기가 있었는데 이제 한국 남자들도 한다. 민망하거나 창피할 것도 아니고 툭 터놓고 이야기한다. 심지어 펜싱 금메달리스트들도 TV 예능에 나와서 자신들이 눈썹 문신을 한 것을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나의 PT 선생님도 눈썹 문신을 하려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을 듣고 세상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특히 여성들에게 있어 문신의 유행은 사고방식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방식, 또는 자주권의 표명이라고나 할까. 옛날에도 일부 남자들은 문신할 권리가 있는 듯이 행동했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했다. 이제 여자도 문신을 한다는 것은 한국사회가 많이 바뀌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글 초반에 언급한 책에 나온 여성의 세계관은 지금의 한국에서는 더 이상 공감을 받지 못할 이야기가 됐다.

문신에 대해 한 가지 더 궁금한 게 있다. 문신을 하고 나서 나중에 후회할 사람을 위해 문신 제거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형외과 병원도 많아지고 있을까라는 것이다.
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는 이번을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즈위슬랏 칼럼을 사랑해주신 독자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필자들의 한국블로그는 이어집니다.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NK News 팟캐스트 호스트
#한국 문신 문화#문신#여론 변화#사고방식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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