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강한 식물처럼… 보육원 후배들이 사회에 단단히 뿌리내리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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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면 녹화, 식물 인테리어 기업 ‘브라더스 키퍼’ 김성민 대표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 키퍼’의 김성민 대표가 벽면을 가득 메운 식물 앞에 섰다. 식물 인테리어와 벽면 녹화 사업을 주로 하는 이 회사는 보호종료아동들을 채용해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 키퍼’의 김성민 대표가 벽면을 가득 메운 식물 앞에 섰다. 식물 인테리어와 벽면 녹화 사업을 주로 하는 이 회사는 보호종료아동들을 채용해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한파가 덮친 취업시장은 말 그대로 ‘엄동설한’이다. 연령대나 학력 수준을 불문하고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편견과도 맞서 싸워야 하는 보호종료아동에게는 취업이 더 큰 관문이다,

사회적 기업 ‘브라더스 키퍼’의 김성민 대표(36)는 보육원 출신 후배들에게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기 위해 벽면 녹화 및 식물 인테리어 기업을 직접 세웠다. 2018년 5월 설립된 브라더스 키퍼는 지난해 매출액 10억 원을 기록하며 코로나19 한파에도 순항 중이다. 올해 예상 매출액은 20억 원. 13일 경기 안양시에 있는 브라더스 키퍼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가족이 돼 주고 싶어 ‘식물’ 통한 자립 사업 시작”

김 대표는 “보호종료아동에게 가족이 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에 있는 한 보육원에서 자란 그는 태어난 장소와 날짜도 모른 채 보육원에서 만들어 준 이름과 생일로 살았다. ‘고아’라는 꼬리표가 붙은 학창시절에는 물건이 없어지면 가장 먼저 범인으로 지목받는 등 차별이 이어졌다. 2004년 만 18세가 돼 보육원을 퇴소했을 때는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한때 방황했다.

그는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으로 ‘직업’을 생각해 냈다. 서울생활을 마친 뒤 안동으로 내려와 미국 국적의 비영리단체에서 근무하며 보육원 후배들을 돕던 김 대표는 아이들이 외국인 선교사가 아니라 자신의 주위에만 머무르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범죄자가 되거나 성매매를 하는 등 직업을 가진 사회구성원이 되지 못한 선배들만 보다가 멀쩡한 직업을 가진 내가 멋있어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2018년 창업 전까지 회사원과 전도사 등으로 근무한 그는 지인의 회사에 보육원 후배들의 일자리를 연계했다. 그러나 김 대표가 취업을 도와준 아이들은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배경을 아는 회사는 직원을 더 챙겨 주려 하고, 직원은 자신이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일자리보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김 대표는 자신이 취업을 도와준 한 후배를 보며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식물이 ‘특효약’이라는 생각을 했다. 조경회사에 취업한 그 후배는 다른 보육원 출신과 달리 6개월이 넘도록 성실하게 출근했다. “매일 식물을 대하면서 정서적으로 안정이 됐다”는 후배의 말에 김 대표는 관련 논문을 뒤졌다. 그는 “사람은 사랑을 받을 때보다 줄 때 정서적 회복력이 10배는 더 높다고 한다. 식물은 사람이 관심을 주지 않으면 자라지 못한다는 점에서 보호종료아동에게 잘 맞는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4년간 퇴사율 0%… 실내 공기질 관리로 사업 확대

김 대표의 예상은 적중했다. 2018년 5월 설립 이후 브라더스 키퍼의 퇴사율은 0%다. 올해 8월 현재 브라더스 키퍼는 전체 직원 11명 중 보호종료아동 8명을 고용하고 있다. 실내벽면녹화로 사업을 시작한 브라더스 키퍼는 현재 식물 인테리어, 화분임대 사업 등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청 시민청, 안양시청 본관 로비, 이니스프리 등 주요 정부기관과 대기업에도 실내벽면녹화를 시공했다.

김 대표는 회사의 성장에 대해 ‘직원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직원들이 성실하게 근무하는 건 기본이고 근무시간 이후에도 사무실에 모여 밤 12시까지 남아 식물 관련 자격증 공부를 한다”고 설명했다. 직원들은 업무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조경기능사를 포함해 국가전문 자격증인 나무의사 자격증에도 도전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직원들은 회사를 키워 더 많은 보육원 후배들을 채용하고 싶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브라더스 키퍼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계약서 체결, 투자 조건 검토 등은 행복나래㈜에서 운영하고 있는 SE컨설턴트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행복나래㈜ 조민영 본부장은 “SE컨설턴트는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한 SK그룹 퇴직 임원들이 전문성 있는 자문이 필요한 사회적기업 및 소셜벤처에 경영전략, 법무, HR 등 경영 자문을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에게 브라더스 키퍼의 목적은 단순히 보호종료아동 몇 명의 자립을 돕는 게 아니다. 그는 “더 많은 보육원 출신을 고용하기 위해 ‘공기 컨설팅’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 시범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인 공기 컨설팅은 포름알데히드, 벤젠 등 실내 대기 중 오염물질을 측정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스킨, 사파이어, 호야, 무늬산호수 같은 식물을 배치·관리해 주는 사업이다.

김 대표는 보호종료아동에게는 다른 사람은 경험하지 못한 삶에서 오는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육원에서의 삶을 선택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느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삶을 보호종료아동들은 이겨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들은 특별하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보호종료아동의 자립을 위해 일할지 묻자 그가 답했다. “더 이상 보육원에 아이들이 들어오지 않을 때까지 일할 겁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보육원 후배#브라더스 키퍼#김성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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