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팽, 넷플 전세계 1위 배경은? 원작 소설도 보름만에 1년치 판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5일 14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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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보건교사가 젤리와 싸우며 학생들을 구하는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고 판타지 소설에 빠진 적이 있나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서점으로 달려가 원작 소설을 산 경험은 없나요? ‘영감(靈感) 어딨소’는 원작과 이를 영상화한 작품을 함께 소개합니다. 이 원작이 왜 영상화됐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살펴보며 작품을 보다 풍성하게 들여다봅니다.》

1905년 프랑스를 뒤흔든 괴도 신사가 나타난다. 이 괴도 신사는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1864~1941)이 창조한 소설 주인공 아르센 뤼팽. 하얗고 갸름한 얼굴에 외눈안경을 걸친 그는 변장술을 자유자재로 쓰며 삼엄한 경비를 뚫고 목걸이를 훔친다. 그런데 한 세기가 지나 뤼팽의 이름을 빌린 한 거구의 흑인 남성이 등장한다. 우리가 알던 뤼팽과 생김새는 전혀 다르지만 범행 방식은 괴도 신사의 옛 모습 그대로다. 이처럼 올 1월과 올 6월 시즌1·2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프랑스 드라마 ‘뤼팽’은 모리스 르블랑의 원작 소설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새롭게 재해석된 뤼팽의 모습이 낯설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개 직후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 1위를 차지한 드라마의 인기에 사람들은 원작 소설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프랑스에선 드라마 공개 전에 1년 동안 팔리던 책 판매량이 드라마 공개 후 보름 만에 다 팔릴 정도다. 파리에 있는 르블랑의 묘(墓)를 찾는 방문객들도 늘고 있다. 2018년 10권짜리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아르테)을 국내에 번역 출간한 번역가 성귀수 씨는 최근 동아일보와 만나 “100년도 더 전에 쓰여진 뤼팽을 모르던 요즘 프랑스 청소년들이 드라마를 보고 원작 소설의 독자가 되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선 뤼팽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드라마의 흥행 배경엔 고전(古典)의 명성이 있다.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내세운만큼 시청자를 사로잡기에 유리했다. 성 씨는 “드라마 제작진이 촬영 허가를 잘 내주지 않기로 유명한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지하 납골당(카타콤)에서 촬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원작의 명성 덕”이라며 “영국 작가 아서 코난 도일(1895~1930)이 1892년 만들어낸 소설 주인공 셜록 홈즈가 2010년 영국 BBC 드라마 ‘셜록’으로 재탄생한 뒤 성공을 거둔 방식과 유사하다”고 했다. 드라마 뤼팽의 총괄 제작자이자 각본가 조지 케이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국가적 지원 덕에 아산이 여러 국가적 명소에서 경찰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을 촬영할 정도로 파리를 하나의 놀이터처럼 사용했다”며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유명 프랑스 배우 오마르 시가 주인공 아산 역으로 드라마 출연을 결정한 이유도 원작이 뤼팽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론 드라마는 원작 소설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 원작 소설은 유명 작품인만큼 이미 영상화된 것이 수십 편이기 때문에 차별화가 필요했기 때문. 성 씨는 “드라마 제작진은 작품의 배경을 현대로 옮기면서 주인공이 백인 남성인 원작 소설과 달리 흑인 남성 주인공을 선택했다.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라는 현대 프랑스의 논쟁거리를 파고들었다”고 했다. 조지 케이는 “지금 프랑스의 현실은 원작 소설의 상황과 다르기 때문에 원작 소설을 그대로 영상화 하지 않았다”며 “현대의 뤼팽은 어떤 모습일지, 뤼팽의 특징을 가진 현대적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어떻게 빠져들 수 있을지,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을 때 현재 우리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다”고 했다.


드라마는 현재 시즌3을 제작 중이다. 조지 케이는 “앞으로도 영감을 주는 원작 소설 아르센 뤼팽의 에피소드를 추려 드라마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했다. 성 씨는 “프랑스는 넷플릭스라는 세계적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통해 자신들의 국가적 문화상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며 “한국 창작자들도 고전을 재해석해 다양한 영상작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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