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여성들 “탈레반엔 총… 우리에겐 앱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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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총격-폭력-도로 봉쇄 등 SNS에 올라온 정보 앱에 띄워
이용자들 위협 회피에 큰 도움… 美로 도피한 앱 개발 26세 여성
“과거 테러때 정보 부족이 계기… 여성, 아이와 함께 철조망 못넘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자유와 안전을 위협받고 있는 여성들이 스마트폰 안전 정보 애플리케이션으로 대응하고 있다. 탈레반의 폭력과 검문이 이어지자 아프간 스타트업이 개발한 앱을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하면서 정부가 무너진 아프간에서 자구책을 찾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20대 여성 사라 와헤디가 개발한 안전 정보 앱 ‘에테사브’가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3일
 에테사브 앱 화면에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을 알려주는 글과 표시가 떠 있다. 에테사브 화면 캡처
아프가니스탄 20대 여성 사라 와헤디가 개발한 안전 정보 앱 ‘에테사브’가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3일 에테사브 앱 화면에 수도 카불 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을 알려주는 글과 표시가 떠 있다. 에테사브 화면 캡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미국 뉴욕포스트 등에 따르면 최근 앱 ‘에테사브(Ehtesab)’를 사용하는 카불 주민이 늘었다. 현지어로 ‘책임’이라는 뜻의 이 앱은 총격이나 폭발, 도로 봉쇄, 정전 등 각종 안전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한다. 지도 위에 표시된 핀을 누르면 “목격자들에 따르면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 북문에서 신원 미상의 인물이 총을 쏴 2명이 숨졌다고 한다”는 내용이 표시되는 식이다. 앱 사용자가 올린 소식과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정보를 카불에 있는 약 20명의 에테사브 직원들이 확인해 올린다. 사건 발생 지역 인근에 있는 사용자에게는 스마트폰 알람을 보낸다. 주민들이 올린 정보가 모여 탈레반의 위협을 피할 수 있는 방어책이 되는 셈이다.


이 앱을 만든 이는 여성이고, 에테사브 직원 상당수도 여성이다. 에테사브 창업자 사라 와헤디(26·사진)는 여섯 살 때 탈레반을 피해 가족과 캐나다로 떠나 난민으로 살다 21세 때 다시 카불로 돌아왔다. 카불이 탈레반의 손에 넘어간 당일 외국으로 도망친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대통령실에서도 2년간 일했다. 투자를 받아 회사를 차려 2018년 3월 이 앱을 내놨다. 탈레반이 정부군에 잇달아 승리를 거두던 올해 초여름 탈레반을 피해 다시 캐나다를 거쳐 미국으로 피신했다.

와헤디는 2018년 5월 아프간에서 자살 폭탄테러를 목격했다. 거리에는 무장 괴한이 돌아다녔고 도시가 봉쇄됐으며 전기마저 끊겼지만 당국을 통해 별다른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경험을 계기로 이 앱을 만들었다고 한다. 와헤디는 기술 관련 미디어 ‘레스트 오브 월드’ 인터뷰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성이 철조망이 쳐진 콘크리트 벽을 넘을 수 있겠는가”라며 “여성은 안전과 피란처를 확보하는 일에서도 장벽을 마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카불의 에테사브 직원들은 집에 숨어 몰래 정보를 올리고 있다. 앱은 “○○에서 탈레반 대원들이 도로를 막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하는 대신 “교통 체증을 유발하는 검문소가 있다”고 에둘러 표현하면서 탈레반을 자극하지 않으려 하지만 언제 탈레반이 집으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여성 직원들이 탈레반의 탄압을 받을 수 있어 사진 등의 개인정보를 앱과 소셜미디어에서 모두 삭제했다고 했다. 일부 직원은 탈레반의 탄압을 받는 하자라족이다. 와헤디는 자신만 카불을 빠져나왔다는 죄책감에 직원들이 아프간을 탈출하도록 애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직원들은 모두 25세 이하”라며 “전쟁 속에 자라 온 아프간의 청년세대는 낡은 집단의 통치 속에서 다시 자신을 숨길 수밖에 없게 됐고, 탈출할 방법도 없는 이 상황이 감옥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에테사브#아프간 여성들#생존 자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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