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가짜뉴스 범람 속 진짜 사진찾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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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불의 국제공항 운영이 재개됐다는 소식과 함께 SNS에서 급속히 퍼져나간 이 영상은 2019년 당시 미국 풋볼경기장으로 밝혀지며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트위터 화면 캡처
카불의 국제공항 운영이 재개됐다는 소식과 함께 SNS에서 급속히 퍼져나간 이 영상은 2019년 당시 미국 풋볼경기장으로 밝혀지며 가짜뉴스로 판명됐다. 트위터 화면 캡처
김재명 사진부 차장
김재명 사진부 차장
이슬람 무장 세력인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는 속보가 외신을 통해 전해졌다. 카불에 있는 미국대사관 위로 대형 헬리콥터가 직원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비행하는 장면을 비롯해 총을 들고 대통령궁을 차지한 탈레반 사진이 회사 단말기를 통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탈레반의 위협을 피해 외신기자들이 대부분 현지에서 철수하게 된 탓에 기자의 눈으로 현장 소식을 전하는 게 어려워졌다. 그렇다 보니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전해지는 카불의 사진과 영상이 보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SNS엔 아이들만이라도 탈출시키려고 철조망 너머 미군에게 올려 보내는 영상과 담을 넘어 공항 안으로 들어가려고 북새통을 이룬 장면들이 공유됐다. 활주로에서 민항기에 타려고 사람을 밟고 트랩을 올라가는 모습과 미군 수송기를 따라 뛰거나 랜딩기어 위에 올라탄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600명이 넘는 아프간 시민들이 수송기에 빼곡히 앉아 있는 사진은 한 명이라도 더 탈출시키려 했던 절박함이 그대로 기록돼 있었다. 그리고 이륙하는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시민의 영상은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 게시물들은 목숨을 걸고 떠나려는 현지의 급박한 상황을 전달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는 형식이 중요치 않다. 현장의 생생한 모습이면 된다. 수평이 안 맞아도, 포커스가 흐려도 괜찮다. 탈레반은 정상 국가처럼 단상을 설치하고 형식을 갖춘 듯 기자회견을 공개했다. 하지만 자신들에게 불리한 총격이나 시민 폭행 같은 장면은 은폐하거나 통제했다. 오히려 언론인들의 집을 찾아다녔고, 남아있던 가족을 사살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취재활동은 제한적이었고, 시민들이 찍은 것이 실상을 알리는 장면으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SNS로 알려진 사진과 영상들은 대부분이 계속 리트윗된 것들이기 때문에 정확한 출처를 알 수 없다. 정황을 통해 추정은 가능하지만 사실이 아닌 가짜뉴스 가능성도 의심해 봐야 한다. 탈레반과 반(反)탈레반 진영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하거나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가지고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도 여부를 결정할 때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 이번 사태처럼 현장 접근이 어려운 경우에는 현지 언론과 다른 유수 언론 등을 통해 팩트체크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통제됐던 카불 공항이 운영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SNS에는 수많은 인파가 대형 건물 내부로 뛰어 들어가는 혼란스러운 장면이 게시돼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이는 2019년 미국 풋볼 경기장에 들어가는 영상에 카불 공항이라는 제목을 단 가짜뉴스로 확인됐다. 이런 게시물을 살펴보고 진위를 판단하는 데는 비슷한 상황에서 사진을 찍었던 경험이 도움이 된다.

과거엔 사진기자들이 사건사고 현장을 찾아가지 않으면 현장의 모습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부피가 크고, 고가인 카메라 장비를 일반인이 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엔 전 세계 어디에서든 시민들이 카메라 렌즈가 달린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고, SNS를 통해 공유하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다. 누구나 현장을 기록하고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기자가 직접 취재할 수 없다면 현장 모습이 담긴 SNS를 찾고 게시물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운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게 됐다. 과거 미국 뉴욕 허드슨강에 비행기가 불시착했다는 소식을 사진과 함께 SNS에 최초로 알린 사람도 구조 보트에 타고 있던 청년이었다. 이 트윗을 보고 CNN 등 전 세계 언론들이 기사화했다. 지난해 백인 경찰의 목조르기로 숨진 플로이드 사망 사건도 인근에서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어 올린 소녀가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사고 현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정리되기 때문에 그 찰나를 담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다 보니 그 순간 현장에 있는 사람만이 가장 잘 기록할 수 있다.

사진은 언어의 장벽이 없는 세계인의 소통 수단이다. 글자는 알아보기 힘들 수 있지만, 사진은 설명이 없더라도 보는 사람에게 즐겁고 행복한 순간부터 슬프거나 감동적인 모습까지 전해줄 수 있다. SNS에 여과 없이 유통되는 수많은 게시물 가운데 어떤 것이 진짜 뉴스인지 가려내는 것이 이제 사진기자의 새로운 업무가 된 것 같다.

김재명 사진부 차장 base@donga.com


#탈레반#가짜뉴스 범람#진짜 사진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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