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서 보고 계실 감독님 위해…男 휠체어농구, 꿈의 도전은 계속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4일 14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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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패럴림픽

한국 남자 휠체어농구 대표팀이 25일 오후 8시30분 무사시노노모리 종합 스포츠 플라자에서 스페인과 2020 도쿄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조별리그 A조 첫 경기를 치른다.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21년 만에 밟는 패럴림픽 본선 무대다. 가슴 벅차고 설레는 게 당연할 것 같은데 마냥 그럴 수만은 없다. 작년 세상을 떠난 고(故) 한사현 감독의 빈자리를 보는 선수들 마음 한구석은 돌덩어리를 삼킨 것처럼 무겁다. 한 전 감독의 못다 이룬 꿈에 계속 도전하기 위해선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다. 슛, 리바운드 하나하나가 비장(悲壯)하다.

● 피와 땀 그리고 눈물
한 전 감독은 국내 휠체어농구의 대부였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로 장애를 갖게 된 그는 10년이 지난 1984년 휠체어농구를 시작했다. 1991년부터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2000 시드니 패럴림픽 때 한국 휠체어농구 사상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은퇴 후 지도자가 된 그는 2010년부터 대표팀을 이끌었고, 2014년 인천 세계선수권에서 사상 첫 8강(6위)도 일궜다. 다음 목표는 2000년 시드니 대회 이후 끊긴 패럴림픽 출전과 4강 진출이었다. 한 전 감독은 오랜 기간 대표팀에서 활약한 주장 조승현(38·춘천시장애인체육회)과 김동현(33·제주삼다수) 등 선수들을 계속 다독이며 ‘원팀’을 만들었다.

2018년부터 간암 투병을 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마침내 2019년 12월 IWBF(국제휠체어농구연맹) 아시아·오세아니아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며 도쿄행 티켓을 따냈다. 수년간 선수들과 함께 몸을 부대끼며 피와 땀을 흘린 끝에 얻은 보상이었다. 꿈의 무대가 눈앞에 온 순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병마가 발목을 잡았다. 코로나로 패럴림픽이 1년 연기됐고, 한 전 감독은 작년 9월 영면했다. 선수들은 울었다.

조승현은 “감독님이 안 계셔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팀의 주장으로서 감독님이 원하시던 ‘우리는 하나다’라는 마음으로 이기든 지든 부딪쳐 보겠다”고 했다. “지금도 하늘에서 보고 계실 거에요. 감독님의 농구 DNA를 코트에서 펼칠 수 있게 도와주실 거라 믿어요.”


● 꿈의 도전은 계속된다
대표팀은 올해 3월 고광엽(49) 감독 체제로 재정비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훈련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른 대표팀과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영상 분석 등을 통해 상대팀에 대비했다. 대표팀의 장점은 스타 팅멤버 5명 전원이 득점력을 갖췄다는 것. 주득점원이 2~3명으로 한정된 다른 팀에 비해 공격 옵션이 다양하다.

한국은 스페인, 캐나다, 터키, 콜롬비아, 일본과 같은 조다. 조 4위 안에 들면 8강에 진출할 수 있다. 첫 상대 스페인은 2016년 리우 대회 은메달의 강호.

조승현은 “스페인은 A조 최강팀이라 부담이 크다”면서도 “상대가 누구든 우리 농구를 하면 된다. 준비한 대로 보여준다면 언더독(underdog·약자) 이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신구 조화가 잘 돼 있다. 세계적인 센터 김동현을 잘 활용해 경기를 풀어가면 잘 될 것”이라고 했다.

목표는 한 전 감독이 생전에 외쳤던 4강이다. 물론 현재 전력으로 쉽지는 않다. 조승현은 “첫 번째 목표는 조별리그 통과, 8강 진출”이라며 “조별리그에서 1위를 한다면 8강에서 B조의 이란을 만날 가능성이 커 4강도 꿈꿀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만약 조 2~4위로 8강에 오르면 세계 3강인 미국과 영국, 호주와 만날 수 있어 어려운 경기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영무(43) 대표팀 코치는 한 전 감독과 과거 대표팀과 서울시청에서 선수, 지도자로 한솥밥을 먹었다. 그는 “스페인은 전통적인 강호이고 국제무대에서 단 한 번도 이긴 적이 없다. 우리가 열세인 것은 분명하지만, 경기 당일 슛 컨디션과 정신력이 좋다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우선 8강 진출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8강에 진출하면 4강도 넘볼 수 있다. 2014년 인천에서 거두었던 세계 6위를 넘어서고 싶다”고 했다.

“도쿄 패럴림픽 때문에 치료까지 포기하면서 생의 마지막까지 농구 열정을 불태웠던 한 전 감독님 기일이 9월26일이에요. 마음 같아선 메달을 들고 선수들과 함께 찾아뵙고 싶지만, 최소한 한 전 감독님이 이루었던 성과(세계 6위)는 꼭 넘어서 ‘수고했고 고맙다’란 말을 듣고 싶습니다.”


도쿄=황규인기자 kini@donga.com·패럴림픽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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