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윤종]세상 구할 위인에서 불신의 아이콘으로

김윤종 파리 특파원 입력 2021-08-23 03:00수정 2021-08-2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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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치료 신드롬 라울 교수, 퇴출 위기
위기일수록 허위와 음모에 현혹되지 말아야
김윤종 파리 특파원
“라울 교수를 건드리지 마(Touche pas ‘a Raoult).”

21일 낮, 프랑스 파리 7구에 있는 보건부 앞. 시위대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강요는 독재”, “선택의 자유를 달라”고 외쳤다. 프랑스에서는 이달 9일부터 카페, 식당, 대중교통 등 이용 시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서를 제시해야 한다.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이날까지 6주째 이어졌다. 전국적으로는 17만 명이 참여했다.

시위 도중 유독 많이 언급된 이름이 있다. 마르세유 대학병원 질병연구센터(IHU) 소장이자 전염병 전문가인 디디에 라울 교수(69)다. 그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1차 유행 당시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으로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단숨에 이름을 알렸다. 긴 머리에 수염을 기른 외모와 카리스마 넘치는 말솜씨까지 갖춘 그는 ‘코로나19에서 세계를 구할 위인’이라며 추종자 집단까지 생겼다. 프랑스 매체 르피가로는 “대학교수라기보다는 ‘록스타’ 같다”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그를 직접 찾아가 자문을 하기도 했다.

현재 라울 교수의 위상은 전 같지 않다. 그는 IHU 소장 자리에서 이달 내로 물러나야 할 상황에 놓였다. 대학 측은 라울이 정년을 넘겨 후임자를 찾는 것이라고 했지만, 현지 언론들은 ‘사실상 퇴출’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 그는 정년 연장을 신청했지만 학교 측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라울 교수가 ‘과학적 검증과 팩트가 뒷받침되지 않은 발언으로 음모론을 키운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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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고집한 클로로퀸 처방의 치료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됐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올해 3월 사용 중지를 권고했다. 그는 5월 유튜브를 통해 “백신 접종자가 코로나19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는 주장도 했다. 또 “백신이 적절한 보건도구가 될 확률은 제로”라며 백신 접종 확대에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21일 프랑스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2만2636명에 달했지만 사망자는 64명에 그쳤다. 확진자 수가 비슷했던 올해 1월 12일의 사망자는 1052명이었다. 주변국보다 백신 공급이 뒤처졌던 프랑스는 전체 국민의 70.1%가 1차 접종을 마쳤다. 독일(63.9%), 미국(61.1%)보다 비율이 높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규모 접종을 시작한 영국(71.3%)과 별 차이가 없다.

시위 규모는 7일 24만 명, 14일 21만 명, 21일 17만 명으로 감소세다. 시위대 속 일부 지지자들은 그의 퇴진이 “정부의 음모”라고 외쳤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예전처럼 라울을 신뢰하기는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크롱 정부가 라울 교수의 주장과 반대 시위를 의식해 백신 접종 의무화를 강행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코로나19 대유행처럼 스트레스와 불확실성이 커진 위기 상황이 닥치면 사람들은 ‘빠른 해결이 가능할 것 같은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을 원한다고 한다. 사실에 기반을 둔 데이터, 현실에 적용 가능한 대안은 느리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데 비해 허위 정보나 음모론은 빠른 해결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게 영국 옥스퍼드대 임상심리학 연구진의 분석이다.

라울 교수의 부침(浮沈)을 보면서 여러 이미지가 떠올랐다. 백신 공급 차질에도 호언장담을 계속하는 정부, 사회 난제를 한방에 해결하겠다고 하는 대선 주자들…. 사실과는 거리가 먼 솔깃한 주장들에 현혹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라울 교수#퇴출 위기#위인#불신의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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