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 세계적 미투 운동… 맨 앞에 그들이 있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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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조디 캔터, 메건 투히 지음·송섬별 옮김/460쪽·1만6000원·책읽는수요일

2017년 10월 세계 곳곳에서 미투 물결이 일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8년 현직 여성 검사가 검찰 간부의 성폭력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정계와 문화계 등 각계에서 여러 인사들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이는 드러나지 않았던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동시에 홀로 고통받던 피해자를 끔찍한 과거로부터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 지류의 시작에는 한 기사가 있었다. 2017년 10월 뉴욕타임스(NYT)에 할리우드 거물의 성추행 및 성적 착취에 대한 기사가 나갔다. 와인스틴 컴퍼니의 설립자이자 공동 회장인 유명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이 30여 년에 걸쳐 배우, 영화사 직원 등을 성추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일로 가득한 세상에서 왜 유독 이 사건이 변화의 진원이 됐을까? 확고하고 압도적인 증거를 제시한 NYT의 두 기자 조디 캔터와 메건 투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라는 문장이 적히기까지 공포와 싸우며 입을 뗀 피해자들이 있었다.

2017년 5월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캔터의 e메일에 배우 로즈 맥고언은 “성차별 문제에 있어 NYT는 자성이 필요하다”며 거절 답변을 보내왔다. 맥고언이 이전에 한 영화제작자가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는데, NYT가 이를 뉴스난이 아닌 스타일난에서 다뤘기 때문이었다. 캔터의 거듭된 부탁 끝에 성사된 전화 통화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기자들은 배우들을 직접 만나고 3년 넘게 수백 건의 인터뷰를 하며 법적 기록, e메일 등을 일일이 확인해 이 책에 담았다.

물론 어떤 여성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변화는 있었다. 에필로그에는 피해자들과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을 2019년 한곳에 초대해 미투 이후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소개한다. 이 자리에는 20여 년 전 와인스틴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할 뻔한 그의 비서 로웨나 추도 있었다. 추는 기자들과 만났지만 침묵을 지키다 이 모임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NYT에 전했다. 끔찍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데는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든 상관이 없다고, 더 이상 혼자 고통 속에 살지 말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그녀가 말했다#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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