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하정민]‘버락 앙투아네트’의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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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부인 미셸 여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7일 미 매사추세츠주 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섬의 야외 연회장에서 열린 오바마의 60세 생일 파티에서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파티 참가자 모두 방역당국의 지침을 어긴 채 마스크를 쓰지 않아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트위터 캡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부인 미셸 여사(왼쪽에서 두 번째)가 7일 미 매사추세츠주 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섬의 야외 연회장에서 열린 오바마의 60세 생일 파티에서 참석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파티 참가자 모두 방역당국의 지침을 어긴 채 마스크를 쓰지 않아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트위터 캡처
하정민 국제부 차장
하정민 국제부 차장
미국 뉴욕타임스(NYT)의 진보 성향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14일 ‘보라, 버락 앙투아네트’란 도발적 글을 게재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호되게 비판했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조지 W 부시 등 공화당 출신 최고 권력자를 주로 질타한 이력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다우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심각한 와중에 매사추세츠주 최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섬에서 배우 조지 클루니, 가수 비욘세 등을 대동하고 마스크 없이 60세 생일 파티를 즐긴 오바마를 프랑스 대혁명 당시 단두대에서 숙청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빗댔다.

전직 대통령이 전염병 대유행 와중에 방역 규정까지 어기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호화 파티를 즐긴 행태는 빵을 요구한 군중에게 ‘케이크를 주라’고 했다는 설이 제기된 앙투아네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우드는 코로나19와 기후변화가 심각한데 왜 오바마가 가수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고 부(富)와 인맥을 과시하는 일까지 지켜봐야 하느냐며 프랑스어로 졸부를 뜻하는 ‘누보리치’의 전형적 행태라고 일갈했다.

폭스뉴스가 아닌 NYT 칼럼니스트가 ‘팩트 폭력’을 가한 사실은 오바마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과 별개로 그의 집권 8년에 대한 미 사회 전반의 실망이 상당함을 보여준다. ‘담대한 희망’을 외치며 초선 상원의원에서 백악관 주인으로 직행한 오바마의 등장 당시 많은 이가 환호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외모도 호감형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의 결정체에다 흙수저 성공 신화까지 갖췄다. 존재하지 않는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전쟁을 일으키고 금융위기까지 잉태한 부시의 과오를 그가 치유해줄 것이란 기대가 컸다.

현실은 달랐다. 국내에서는 오바마케어 논란으로 야당 공화당과의 대립이 심해져 걸핏하면 연방정부가 문을 닫았고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양극화도 심화했다. 나라 밖에서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창궐했고 현직 리비아 주재 미국 대사가 무장폭도에게 피살됐다. 중동을 포기하더라도 중국의 급부상만은 견제하겠다는 ‘피벗 투 아시아’ 정책을 폈지만 폭주하는 중국을 제어하지 못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합병 또한 막아내지 못했다. 대내외 정책 모두 실패한 채 트럼프란 이단아의 집권 문만 열어줬다는 비판이 컸다.

이는 오바마가 집권 중 현직 대통령의 신임 투표 성격이 강한 두 차례의 중간선거에서 모두 패해 국정운영 동력을 잃은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패배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는 사안이 바로 오바마케어다. 세계 최강대국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고 과도하게 비싼 미국의 의료체계를 뜯어고치겠다는 취지 자체는 좋았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전통이 강한 많은 미국인에겐 나의 세금을 불법 이민자 등 지원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낭비하는 악덕 제도로 비쳤다. 선의(善意)만으로는 복잡다단한 현실을 돌파하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까지 설득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오바마의 집권 말기 여론조사에서 그를 한 단어로 정의하라는 말에 ‘좋음(good)’과 ‘무능(incompetence)’이 비슷하게 나온 것 또한 대통령 오바마의 ‘성품’과 ‘능력’에 대한 평가가 각각 어땠는지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이란 판도라의 상자를 연 ‘오바마의 부통령’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또한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이대로 놔두면 결코 끝나지 않을 전쟁을 누군가는 끝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해도 어떻게 끝을 내느냐는 ‘과정’을 경시해 상상할 수 없는 후폭풍을 초래했다. 아프간 철군으로 여론 지지를 확보해 내년 중간선거 승리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은 빗나가고 오히려 중간선거 패배의 그림자가 벌써부터 어른거린다. 상원 100석을 공화당과 정확히 50 대 50으로 나눠 가지는 바람에 대규모 경기부양안 등 주요 입법이 사사건건 가로막혀 답답한 현실은 이해하나 준비 안 된 철군이야말로 국정운영의 최대 걸림돌일 수 있음을 정말 몰랐을까. 최고권력자의 최대 덕목은 ‘인간적 매력’이 아니라 ‘유능함’이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미국 뉴욕타임스#버락 오바마#버락 앙투아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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