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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독립이론 만든 ‘대만의 매운 언니’, 시진핑에 대등한 대화 요구[글로벌 포커스]

입력 2021-08-14 03:00업데이트 2021-08-1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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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중국’ 반발… 中과 맞서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
유복한 집안 11남매 중 막내딸, 2016년 압도적 지지로 첫 여성총통
작년 재선 성공… ‘반중친미’ 강화
지난해 7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헬멧을 착용한 채 대만 중부 타이중 지역 자난 해안에서 실시된 ‘한광(漢光)훈련’을 참관한 후 연설하고 있다. 이날 차이 총통은 “국가안보는 비굴하게 무릎을 굽히는 것이 아닌 견고한 국방력에 의지하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총통실 홈페이지 캡처
4일 대만 공군의 주력 전투기인 ‘미라주 2000’ 4대가 대만 상공에 출격했다. 대만 전투기 출격은 주로 중국 전투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을 때 대응 성격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대만 선수단이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고 대만 국적기인 중화항공의 비행기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기 위한 출격이었다. 대만 전투기들은 올림픽 귀국 항공기가 대만 영공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양옆에 따라붙었다. 전투기들은 선수단이 볼 수 있도록 항공기 양쪽에서 폭죽처럼 플레어(섬광탄)까지 쏘면서 환영했다. 이 항공기에는 배드민턴 남자복식 금메달리스트인 리양(李洋)과 왕치린(王齊麟)도 타고 있었다. 리양-왕치린 조는 지난달 31일 열린 남자복식 결승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따며 대만의 국민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이날 전투기를 출격시키고 섬광탄까지 터뜨리며 선수단을 환영하도록 한 것은 모두 차이잉원(蔡英文·65) 대만 총통의 지시였다. 세계 최강 중국 배드민턴을 꺾으며 금메달을 거머쥔 선수들에 대해 최상의 예우를 갖추도록 한 것이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며 대만에 대한 압박 수위를 갈수록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배드민턴 경기를 통해 대만이 중국과 다른 독립국가임을 세계에 알렸기 때문이다. 독립 성향이 강한 차이 총통 입장에서는 도쿄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중국의 압력 때문에 국호를 ‘대만’이 아닌 ‘차이니스 타이베이(Chinese Taipei)’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통쾌한 복수이기도 했다. ‘대만의 매운 언니’라는 뜻의 ‘라타이메이(辣台妹)’라고도 불리는 차이 총통은 이런 스타일이다.

○ 곳곳서 드러나는 차이 총통 반중 정서

4일 대만의 미라주2000 전투기 한 대가 도쿄 올림픽에서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자국 배드민턴 선수들이 타고 있는 여객기 옆에서 날고 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지시로 이날 대만 공군은 미라주2000 전투기 4대를 띄우고 ‘플레어(섬광탄)’를 쏘며 선수들을 환영했다. AP 뉴시스
대만 첫 여성 총통인 차이잉원의 반중 독립 성향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대만 최대 군사훈련인 한광(漢光·Chinese Glory) 훈련이다. 이 훈련은 1984년 이후 매년 진행되고 있지만 차이 총통 집권 2기(2020∼2024년)에 들어서면서 더 강화되고 있다.

올해부터 훈련 기간이 5일에서 13일로 대폭 늘어났다. 지난해까지는 5일 동안 지휘소 훈련(CPX), 기동 훈련, 상륙저지 훈련 등을 한꺼번에 진행했지만 올해는 상반기에 이미 8일 동안 CPX 훈련을 별도로 진행했다. 이는 지난해부터 중국이 대만 ADIZ에 공군기를 자주 진입시키는 데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 9월 진행할 예정인 5일 동안의 훈련을 합하면 총 13일 동안 훈련을 하게 되는 것으로 훈련 기간만 두 배 이상 늘어났다.

훈련의 강도도 세지고 있다. 올해 훈련에서는 중국군의 침공으로 대만 공군 기지가 파괴된 상황을 가정해 대만 공군기가 비상활주로에서 이착륙하는 훈련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의 최신 스텔스 초계함 타장함도 이번 훈련에 처음으로 참가한다. 타장함은 대만이 자랑하는 최신 함정으로 중국군 항공모함이나 상륙강습함 저지가 최대 목표다. 타장함은 초음속 대함 미사일, 3차원(3D) 방공레이더, 단거리 방공미사일, 76mm 함포와 벌컨포 등으로 무장했다.

차이 총통은 지난해 재선에 성공하면서부터 ‘반중친미’ 노선을 분명히 했다.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한 이후 올해 1월 가진 취임 연설에서 “베이징이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로 대만을 왜소화하고, 대만이 사실상 독립된 주권을 누리고 있는 대만해협의 현상을 파괴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만은 이미 독립국가”라면서 대만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을 향해 ‘현실을 직시하라’고 지적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책임 있는 자세’와 ‘대등한 대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여기에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할 뜻을 밝혔다. 그는 “기동, 반격, 비전통의 비대칭 전력에 역점을 두고 발전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대칭 전력은 핵무기, 생화학무기, 탄도미사일 등 대량살상이 가능한 무기를 포함한다. 중국과 군사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대만은 차이 총통 취임 이후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무기들을 수입하고 있다.

그는 중국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을 향해 “내정 간섭”이라며 관여하지 말라는 홍콩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홍콩의 민주화시위를 공개 지지한 데 이어 홍콩 시민을 돕겠다고 선언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홍콩인의 대만 이주와 취업 등을 지원하는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 혈통부터 대만 독립 지향

차이 총통의 독립 성향은 그의 혈통에서부터 드러난다. 차이 총통은 1956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은 청나라 때 대만으로 이주해 온 본성인(本省人) 출신이다. 본성인은 수백 년 이상 대만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말한다. 대만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본성인은 대만 남부지역에 많이 거주하며 현 집권 민진당의 지지 기반이기도 하다. 야당인 국민당 지도자들은 대부분 국공내전 후 대륙에서 건너온 외성인(外省人) 출신이 많다.

차이 총통은 본성인 중에서도 객가인(客家人)의 혈통을 갖고 있다. 객가인은 ‘타향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객가인은 중국에서 명청 교체기인 17세기에 중국 북부 지방이나 중원에 살던 한족들이 재난을 피해 남부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차이 총통은 이런 객가인 지지자들로부터 ‘객가의 딸’로 불리기도 했다. 차이 총통의 친할머니는 대만의 산악지역에서 거주해 온 원주민 파이완(排灣)족 출신이다. 이처럼 그의 조상은 수백 년 이상을 대만에 거주해 온 사람들로 대만의 중국 종속화에 대한 거부감이 강할 수밖에 없다.

○ 유복한 집 막내딸


차이 총통은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네 번째 부인이다. 그는 11명의 형제자매 중 막내다. 객가인 출신인 아버지는 차량 수리업을 통해 집안을 일으켰고 숙박업, 부동산 투자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객가인들은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릴 정도로 경제적 수완이 좋은 사람이 많다.

네 번째 부인의 딸인 차이 총통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미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으로 가출한 적도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잘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관계가 좋아졌다.

그는 1974년 명문 대만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해 대만대 법대 1등 졸업생은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이었다. 차이 총통은 1978년 대학 졸업 후 미국 코넬대로 유학을 떠나 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대만에 돌아와 1984년부터 대만 국립정치대 법대 교수를 지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국민당 리덩후이(李登輝) 총통 시절 행정원 경제부에서 국제경제조직수석법률 고문을 맡았다. 이때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위한 수석교섭대표를 지냈다.

○ 대만 독립 모든 이론 확립에 관여

그는 1994년 행정원 대륙위원회의 자문위원에 위촉되면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관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1999년에는 국가안전회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이때 대만 독립을 핵심으로 하는 ‘양국론’ 작성 작업에 참여했다.

리덩후이 총통은 같은 국민당이지만 이전에 대만을 다스렸던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 부자(父子)와는 달랐다. 그는 대만에서 태어난 인물이었고 대만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 대만 독립을 선호하는 인물들을 발탁해 정치적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는데 차이잉원도 이 같은 배경으로 정부 자문위원에 발탁된 것이다.

2000년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됐을 때 양국론 작성에 참여했던 차이잉원의 재능을 아낀 천 총통은 당시 44세인 차이잉원을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위원장·장관급)으로 파격 발탁했다. 차이는 이때 일변일국론(一邊一國論)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일변일국론은 중국과 대만이 별개의 독립된 국가라는 게 핵심이다. 대만독립론의 핵심인 양국론과 일변일국론 모두 차이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셈이다.

○ 민진당 이끌며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


천수이볜이 재선에 성공했던 2004년 차이잉원은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을 사직한 후 정식으로 민진당에 입당해 정치인으로서의 본격 행보를 시작했다. 그해 총선에서 민진당의 비례대표 순위 6번으로 입법위원(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6년에는 행정부 부원장(부총리)으로 올라서며 승승장구했다.

2008년 대선에서 국민당의 마잉주(馬英九) 후보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며 민진당 정권이 막을 내렸다. 기존 인물들이 민진당 주석 자리를 모두 고사하면서 정치 신인이지만 국민적 신망이 높은 차이잉원이 주석을 맡게 됐다. 이후 3년간 각종 선거에서 집권 국민당에 7차례나 승리하며 차이에게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2012년 대선에서 민진당 후보로 나섰지만 마잉주 국민당 후보에게 80만 표 차로 아깝게 패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주석에서 물러났던 그는 2014년 5월 93%가 넘는 당내 경선 지지율을 얻으며 주석으로 복귀했다. 그는 민진당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2016년 1월 총통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국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대만 최초 여성 총통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미혼인 차이 총통은 독서를 즐기고 와인을 마시며 고양이와 시간 보내길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리스마가 부족한 실무형 정치인이란 평가도 있지만 모든 면에서 준비가 철저하고 소신이 강하다는 점은 장점으로 꼽힌다.

그는 2004년 정치에 입문한 이후 단 한 번도 부패스캔들을 일으키지 않았다. 외모가 청아하고 항상 단발머리인 그는 중화권에서 유명한 김용(金庸)의 무협소설 ‘신조협려’에 나오는 소룡녀(小龍女)의 이미지와 비슷해 ‘대만의 소룡녀’라는 별명도 있다.

차이 총통은 유학 경험 때문인지 역대 민진당 지도자들보다 글로벌 마인드도 강하다. 자신이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 비유되는 것을 좋아하고 실제 롤모델도 메르켈 총리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단호함과 뚝심으로 무장한 차이 총통의 리더십은 메르켈 총리와 닮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 대만은 미중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제정치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만과의 통일을 중국 공산당의 남은 과업으로 여기는 시 주석에게 맞서 반중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 차이 총통이 이끄는 대만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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