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디젊은 시절의 혈기, 비극으로 끝난다 한들 어찌 그들만의 탓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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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22〉소년을 어찌 허물하랴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1991년)의 절정은 열다섯 살 소년 샤오쓰가 소녀 샤오밍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자신은 이 세상처럼 변하지 않는다며 샤오밍은 구애를 거절한다. 샤오쓰는 격분해 샤오밍을 찌르곤 절규한다. 조찬한(趙纘韓·1572∼1631)의 시도 16세기말 한 불량소년의 파란곡절을 읊는다.




한시사에서 협객이 등장하거나 그들의 의리를 다룬 작품을 ‘유협시(游俠詩)’라고 부른다. 시인은 나수양 같은 무뢰배를 한양의 협객이라고 치켜세우며 그들의 삶에 주목한다. 중국 역사 속의 협객을 읊은 시들과 달리 조선의 협객을 읊었다는 점이 특별하다. 시인은 한양의 시정에서 횡행하던 나수양 형제들의 위세를 묘사한 뒤 왜란 뒤 몰락한 나수양과 해후하곤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비감에 젖는다.

영화 역시 시대의 격랑에 휩싸인 불량소년의 비극을 조명한다. 때는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베이로 천도한 지 10여 년이 흐른 1961년. 샤오쓰는 불우한 환경의 샤오밍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둘러싼 패거리들 중 하나에 들어가 상대 패거리에게 죽은 보스의 복수를 한다. 학교에서 퇴학당한 샤오쓰는 시국사건에 연루된 아버지의 문제까지 겹쳐 샤오밍에게 더 집착하게 되고 결국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다. 에드워드 양 감독은 대만에서 실제 벌어진 이 살인사건을 통해 국공내전 패배로 엄혹한 계엄통치와 인권 유린이 자행되던 당시 대만의 비극을 암시한다.

한시도 왜란으로 인한 조선 사회의 참상을 무뢰배의 인생유전을 통해 드러낸다. 마지막에 언급한 진무양(秦舞陽)은 자객인 형가(荊軻)를 따라 진시황 암살을 시도한 인물이다. 열세 살에 살인을 저지를 만큼 흉포했지만 정작 거사 당일 긴장해 실수를 저질렀다. 시인은 이 일을 가지고 나수양을 짐짓 격려하며 일본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낸다.

시와 영화 모두 불량소년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 감싸 주려 한다. 그들의 허물은 당시 사회의 문제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시는 이렇게 말한다. “소년의 혈기를 어찌 허물하랴!”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한시#영화#샤오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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