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독재국 벨라루스 제재”… 루카셴코 “3차대전 하자는 거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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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셴코 부정선거 1년째 되는날
바이든, 독재관여 23명 등 제재명령, 英도 석유-담배 수출기업 거래제한
루카셴코, 8시간 ‘1주년 간담회’… “우리와 러를 전쟁으로 몰아붙여”
英엔 “미국의 애완견” 맹비난…현지 언론 “푸틴 믿고 강경 발언”

9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루키스케스 광장에서 벨라루스 국적의 국민들이 지난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벌였던 대규모 반정부시위 1주년을 기념해 모였다. 빌뉴스=AP 뉴시스
9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루키스케스 광장에서 벨라루스 국적의 국민들이 지난해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벌였던 대규모 반정부시위 1주년을 기념해 모였다. 빌뉴스=AP 뉴시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이른바 ‘유럽의 북한’으로 불리는 벨라루스 독재 정권에 전방위적인 제재를 가하고 나섰다. 1994년부터 장기 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67)이 작년 대선에서 승리한 지 꼭 1년째 되는 날 이뤄진 조치다. 미국 등 서방국들은 지난해 이 선거를 부정 선거로 규정한 상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동시다발적인 제재 조치에 루카셴코는 “3차 대전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일 루카셴코 대통령 측근 등 23명, 벨라루스 국영기업과 주요 기관 등 21곳을 새 제재 대상에 올리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루카셴코 정권은 국민의 의지를 존중하기보다 부정 선거를 자행했고, 반대 의견을 억누르기 위해 잔혹한 탄압을 했다”며 “미국은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동맹과 함께 루카셴코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미 재무부는 벨라루스 최대 국영 기업이자 세계 최대 비료 생산기업인 ‘벨라루스칼리 OAO’를 비롯해 벨라루스 최대 담배회사 ‘그로드노 토바코 팩토리 네만’, 주요 은행 ‘압솔루트’에 거래제한 등의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이들은 벨라루스의 주요 수입원으로, 루카셴코의 불법 자금원으로 이용된다는 비판을 받아온 기업들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신변 위협을 느낀 벨라루스 육상 여자 국가대표 크리스치나 치마노우스카야(24)가 폴란드로 망명한 가운데 벨라루스 국가올림픽위원회(NOC)도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권력 이양이 추진 중인 루카셴코의 장남 빅토르(46)가 위원장인 NOC는 돈세탁, 제재·비자 제한 회피처로 활용돼 왔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영국도 이날 석유, 담배 등 벨라루스 주요 수출 분야 기업과 거래를 제한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벨라루스 발행 증권을 사거나 보험 등을 제공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캐나다도 유사한 제재를 이날 가했고 유럽연합(EU)도 제재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서방의 벨라루스 제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은 인권 탄압을 이유로 2006년부터 루카셴코 정권에 제재를 가해 왔다. 올해 5월 루카셴코가 야권 언론인 라만 프라타세비치를 체포하기 위해 아일랜드 민항기를 자국에 강제 착륙시켰을 때도 미국과 EU는 입국 제한, 자산동결 등을 단행했다.

서방의 전방위적인 제재에 루카셴코는 “3차 세계대전을 하자는 것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타스통신은 전했다. 그는 9일 무려 8시간 동안 진행된 1주년 간담회에서 “(서방은) 3차 세계대전을 시작하려는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우리와 러시아를 몰아붙이고 싶나”라고 했다. 영국에 대해서는 “미국의 애완견(American lapdogs)”이라며 “자국이 가한 제재에 질식하게 될 것”이라고 비난했다.

인권 탄압 지적에 대해서는 “지난해 대선은 투명하게 치러졌다. (벨라루스에서) 탄압을 자행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총으로 쏘는 행위다. 나는 절대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위대가 칼을 들고 바리케이드에 돌진했고, 야권은 쿠데타를 준비하고 있다”며 “나는 완전히 제정신”이라고도 했다. 그는 “늙어서까지 권좌에 있을 생각은 없다”며 적절한 시점에 퇴임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이후 벨라루스 국민 3만5000명이 수감 중이며 고문을 당한 인원은 5000명이 넘는다고 BBC는 전했다.

루카셴코의 강경 발언의 배경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분석했다. 루카셴코는 지난해부터 수차례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의 지지를 호소했다. 푸틴 역시 5월 루카셴코에게 차관 5억 달러(약 5800억 원)를 제공하며 화답했다. 푸틴이 루카셴코를 지지하는 이유는 러시아 영토 확장과 연관돼 있다. 국경을 맞댄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1999년 ‘연합국가’ 창설 조약을 통해 국가 통합을 추진 중이다. AFP는 “서방의 벨라루스 제재는 러시아 지원으로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


#벨라루스 제재#루카셴코#3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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