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문센을 승리로 이끈 전략, 기업들에 적용할 수 있을까[광화문에서/김창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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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DBR교육컨벤션팀장
김창덕 DBR교육컨벤션팀장
20세기 초로 시계를 되돌려 보자. 장소는 남극이다. 일단 차디찬 빙하만 떠올려도 한여름 무더위가 잠깐이나마 가시지 않는가.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은 1911년 12월 남위 90도에 인류 첫발을 내디뎠다. 남극점에 꽂은 깃발 사진 한 장으로 그는 전 세계 교과서에 실리는 역사적 인물이 됐다. 반면 영국인 로버트 스콧은 한 달여의 근소한 차이로 ‘최초’ 타이틀을 놓쳤다. 좌절한 스콧은 기지로 귀환하던 중 다른 대원들과 함께 남극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 유명한 라이벌전은 훗날 많은 역사학자, 사회학자, 경영학자들의 분석 대상이 됐다. 아문센은 북극 이누이트족의 지혜에, 스콧은 당시 과학기술과 자신의 경험에 의존했다고 한다. 몇 가지 요소만 추려 보면 그린란드 허스키, 에스키모 털옷, 짧은 신규 루트를 선택한 아문센이 만주 조랑말, 모직 방한복, 다소 멀지만 알려진 루트를 이용한 스콧을 압도했다.

한 세기 전 인물까지 소환한 것은 현재 기업들 앞에 놓인 길이 당시 탐험가들이 걸어간 남극 대륙의 미개척 루트와 다르지 않아서다. 코로나19 확산과 변이 바이러스의 재확산은 기업들을 무력감에 빠뜨리고 있다. 시계(視界) 제로 상태로 생존의 절벽에 내몰린 기업들은 ‘포스트 코로나’를 언급할 여유조차 사라졌다.

남극은 살을 에는 추위만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크레바스와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눈보라를 수시로 맞닥뜨려야 한다. 아문센이 이러한 극한의 환경을 이겨낸 가장 중요한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목표의 단순성이다. 남극점 최초 정복과 탐사를 동시에 이루려 한 스콧은 상대적으로 체력이 약한 과학자들까지 대원으로 합류시켰다. 아문센은 남극점 도달 외에는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았다. 대원들도 체력, 생존 능력, 스키 기술만 보고 뽑았다. 베이스캠프를 출발한 뒤에는 ‘하루 28km 이동’이라는 원칙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다. 구체적이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도 조직원들의 혼란이 최소화됐다.

국내에서도 이를 잘 활용하는 사례가 있다.

‘에이틴 시리즈’ ‘엔딩 시리즈’ 등 시즌제 웹드라마로 돌풍을 일으킨 콘텐츠 기업 플레이리스트다. 이 회사는 모든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분명한 목적(Object)과 구체적 핵심결과(Key Result)를 미리 정해 참여 인원 전체와 공유한다. 에이틴 시리즈의 목적은 ‘10대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작품’, 이를 실현할 핵심결과는 ‘시청 시간’이었다. 이후 세부 전략은 오직 시청 시간을 늘리기 위한 방향으로 마련됐다. 플레이리스트의 박태원 대표는 이런 OKR(목적과 핵심결과) 방식을 구글에서 일할 당시 습득했다고 한다.

OKR를 아문센에 대입해 보면 ‘하루 28km 이동’이란 구체적 핵심결과를 통해 ‘남극점 도달’이란 최종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위기 상황 극복 레시피 중 하나로 이 아문센 방식을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작은 조직이나 프로젝트부터 적용해 보는 건 충분히 해봄 직한 실험일 것 같다.



김창덕 DBR교육컨벤션팀장 drake007@donga.com


#아문센#승리#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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