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송별[이준식의 한시 한 수]〈120〉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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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백 배 타고 떠나려는데 홀연 강언덕에 발 구르며 부르는 노랫소리 들린다.

도화담 물이 깊어 천 자나 된다 해도 날 전송하는 왕륜의 정에는 미치지 못하리.

(李白乘舟將欲行, 忽聞岸上踏歌聲. 桃花潭水深千尺, 不及汪倫送我情.)

- ‘왕륜에게(증왕륜·贈汪倫)’ 이백(李白·701~762)


이백승주장욕행, 홀문안상답가성. 도화담수심천척, 불급왕륜송아정.

도화담(桃花潭) 일대 유람을 마치고 막 떠나려는데 문득 강 언덕에서 들려오는 답가(踏歌). 사람들이 서로 손 잡고 발로 땅을 구르며 합창하는 소리다. 술잔이나 시를 주고받는 여느 전별연과 달리 왕륜은 떼 창이라는 깜짝 이벤트로 이백을 전송한다. 소리껏 노래하는 이런 환송 인사가 이백은 놀라우면서도 유쾌했을 것이다. 천 길 깊은 물속도 이 사람의 온정에는 미치지 못할 거라 탄복한 까닭이다.

왕륜은 도화담 인근에서 현령(縣令)을 지낸 인물로 이백과의 친교는 우연한 계기로 이루어졌다. 그곳을 찾기에 앞서 이백은 왕륜에게서 편지를 한 통 받는다. 이백의 시명을 흠모해 온 그가 일방적으로 보낸 초대의 글이었다. 그곳에 도화(桃花)가 십리나 뻗어 있고 만가(萬家) 주점도 있으니 술을 좋아하는 선생께서 꼭 한 번 찾아주십사 하는 내용이었다. 이백이 흔쾌히 수락하고 당도하자 왕륜이 말했다. 사실 도화는 도화담을 일컬은 말이요, 만가 주점이란 술집이 많다는 게 아니라 술집 주인이 만씨라는 뜻이라고. 이 재치 있는 해명에 이백은 가가대소했고 둘은 수일간 함께 유람을 즐겼다.

짤막한 시 속에 시인 자신과 상대의 이름자를 모두 담는 사례는 한시에선 흔치 않은 일종의 파격. 굳이 시인이 이런 파격을 선택한 건 자신이 스무 살 연장임에도 친근하고 소탈하게 상대에게 다가서려는 특유의 사교 방식이랄 수 있겠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이준식#한시 한 수#왕륜에게#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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