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둔 부모, 딸 둔 부모[횡설수설/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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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들보다 딸이란다. ‘딸은 예쁜 도둑, 며느리는 좀도둑, 아들은 큰도둑’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아들 가진 부모가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이 많아 은퇴도 못 하고 오래 일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나중에 늙어서 돌려받지도 못하니 ‘큰도둑’이란 표현이 크게 틀리지 않는 셈이다.

▷1935∼1950년대에 출생한 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 성별 및 숫자가 부모의 은퇴와 근로시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딸보다 아들을 둔 부모가 더 오래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들이 한 명 늘어날 때마다 아버지의 주당 근로시간은 16.8% 증가하고 은퇴 확률은 5.5∼6%포인트 줄어들었다. 영문 학술지 ‘고령화 경제학저널’ 최신호에 게재된 ‘한국의 가족 내 재산 양도, 남아 선호, 은퇴 시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자식에게 들인 비용은 돌려받지 못해 그만큼 노년의 가난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이 연구엔 김경국 경제부총리 비서관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연구에 따르면 아들 키우느라 허리가 휘는 이유는 주거비용 탓이다. 한국에선 결혼할 때 ‘남자는 집, 여자는 살림’이라는 인식이 있어 아들에게 집을 해주느라 은퇴할 자유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2∼2019년 결혼한 1779가구를 조사한 자료에서도 신혼집 마련에 쓴 비용은 1억9500만 원이고, 남녀 기여도는 8 대 2이며, 이 중 40%를 부모가 지원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KB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서울의 평균 전셋값이 6억3000만 원이니 아들이 하나인 집과 둘인 집의 부담은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요즘 결혼시장에선 외동아들이면 가산점을 받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집값이 뛰면서 남녀 간 기여도 차이는 줄어드는 추세다. 웨딩컨설팅회사 듀오웨드는 매년 신혼부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혼비용 보고서를 발표한다. 2017년과 올해 자료를 비교해보니 결혼비용 가운데 신혼집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71%에서 82%로 커졌고, 남녀 기여도는 65 대 35에서 61 대 39로 격차가 줄었다. 딸 가진 부모의 부담은 그만큼 커지고 있는 셈이다.

▷결혼비용 부담에서 남녀는 평등해지고 있지만 부모 의존도는 높아지고 있다. 앞서 듀오웨드 조사에서 ‘부모 도움 없이 결혼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2017년엔 74%였는데 올해는 45%로 확 줄었다. 부모의 재력에 따라 신혼집 마련 여부가 결정되고 평수가 달라질 경우 세대 내 불평등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성실한 남녀가 제 힘만으론 가정을 꾸릴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다간 ‘딸이건 아들이건 자식은 모두 큰도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지 모른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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