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저장 수단이 된 부동산[동아광장/하준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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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거품’ 단계에 접어든 아파트 값
규제 틈새 속 절세 행보도 집값 불안 초래
부동산 거품 피하려면 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경제부총리가 집값 고점을 경고했지만 시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집값 거품이 심하다는 데 다들 공감하지만 가격 하락 기대는 오히려 줄었다. 거품은 더 커질 것이고 나중에 혹시 거품이 빠져도 지금 집값보다는 비싼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다.

자산 가격에 거품이 꼈다는 사실을 모두 아는데도 거품이 계속 부풀 수 있을까. 경제학에선 이런 현상을 합리적 거품(rational bubble)이라고 한다. 거품이 거품 그 자체의 논리로 지속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서울 아파트 중간값이 6억 원을 넘었을 때 말도 안 되는 거품이라고들 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거품은 10억 원을 넘었다. 거품이 이렇게 단단하다면 그것을 지탱하는 합리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합리적 거품은 금리가 자산 가격 상승률보다 낮을 때 만들어진다. 매년 금리 부담이 100만 원인데 가격이 100만 원보다 많이 오른다면 거품이든 아니든 가격은 계속 부풀어 오른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은 그 쓸모가 불확실한데도 가격 상승 기대만으로도 가격이 유지된다. 경제학자,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들이 비트코인은 실질가치가 없다고 아무리 얘기해도 그 가격은 아직도 제로보다 훨씬 높은 수천만 원 수준이다. 금리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제로금리를 유지하며 거품을 탓하면 거품이 꺼지겠나. 잠깐 거품이 빠지다가도 바이러스 확산 등으로 저금리 기대가 퍼지면 가격은 다시 오른다.

부동산도 비트코인과 비슷한 면이 있다. 희소성을 기반으로, 화폐 가치가 불안한 시기에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활용된다. 한국의 신축 아파트는 멀리서 보면 꼭 컴퓨터 칩같이 생겼다. 그 아파트의 한 칸을 직접 가보지도 않고 구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아파트는 비트코인보다 쓸모가 확실하고 장기 저축용이 많아 다루기 더 어려운 상대다.

한국 부동산이 유독 비싸고 가치 저장에 즐겨 쓰이는 이유는 금리와 보유 비용이 낮아 합리적 거품의 조건을 쉽게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저금리여도 대출이 소득에 엄격히 연계되면 수요가 무한정 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엔 느슨한 조건으로 큰돈을 빌려주는 전세자금 대출이 있어 저금리가 거품을 만드는 상황을 제어하기 어렵다. 선진국들처럼 부동산 보유세율이 높다면 그것이 금리의 역할을 일부 대신할 수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집값 거품을 정말 잡고 싶다면 부동산을 가치 저장 수단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해야 한다. 삶의 필수조건인 땅을 가치 저장에 쓰는 경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땅은 유한하고 개발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폭증하는 가치 저장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 국채를 가치 저장 수단으로 삼으면 기업이 더 생기거나 공공재가 늘어나므로 지속 가능하지만 땅은 늘어나지 않는다. 좋은 땅 소유자에게 경제의 부를 몰아줄 뿐이다. 부동산에 부를 저축하는 경제는 거품에 취약해 초저금리를 버틸 수 없고, 약한 고리부터 무너져 내린다. 초저출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정부는 주택 투기 수요를 줄이려고 1주택 실거주 장기보유자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부작용을 낳는다. 다주택자에게 집을 팔라고 하자 똘똘한 한 채로 돈이 몰려 인기지역 집값이 올라가고, 대출 규제가 약한 비인기지역은 키 맞추기로 따라 올라간다. 1주택 실거주를 우대하니 세입자를 내보내고 자녀에게 증여한다. 해외나 지방에 거주하던 서울 강남 집주인은 세입자를 내보내고 직접 들어와 산다. 장기보유를 우대하니 도심을 벗어나고 싶어도 눌러 산다. 규제의 틈새에서 발생하는 절세 이득이 너무 커서 나타나는 수요 왜곡 현상이다. 가구 분리로 가구 수가 크게 늘어 주택 수요가 오히려 커진 것도 이 흐름과 무관치 않다. 실거주 장기보유 1주택에 파격적 가치 저장 혜택을 주니 무리해서라도 그 요건을 맞추려 한다. 그 결과는 시장 불안과 집값 불안이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부동산의 가치 저장 수단화를 제어할 수단, 즉 빈틈없는 금융 규제와 땅값에 비례한 적정 보유세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예외가 많을수록 시장은 혼란해진다. 재산에 대한 세금은 소유자가 누구든 재산 가치에 비례해 부과해야 왜곡이 적다. 보유세 강화는 인기 없는 정책이므로 쉽지 않지만 과세이연을 유연하게 하고 걷은 돈을 개개인의 실질 부담을 줄이는 데 잘 쓴다면 가능성은 높아질 것이다. 부동산 거품으로 모두가 고통받는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밖에 없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부동산#가치 저장 수단#합리적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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