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와 현장의 차이[임용한의 전쟁사]〈173〉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1-08-03 03:00수정 2021-08-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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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16년 8월 2일. 분명 먼지와 지열이 땅에서 피어오르고, 타는 듯 무더웠을 이탈리아 남부 칸나에 평원에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타렌티우스 바로가 지휘하는 로마군 약 9만 명과 한니발이 지휘하는 카르타고군 5만 명이 맞붙었다.

이 역사적인 장소는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도로 사정도 좋지 않고, 기념관은 일주일에 절반쯤 문을 연다. 15만 명에 가까운 병사와 2만 마리 말들로 덮여 있었던 벌판에는 올리브 나무만 빽빽하다. 이날 벌어진 전투는 전술가와 사관학교 생도들이 가장 많이 연구하는 전투가 되었다. 카르타고의 일방적인 승리도 승리지만, 로마군 5만 명 내지는 7만 명이 현장에서 학살당했다. 2배나 많은 적을 상대로 승리하기도 어렵지만, 대포와 기관총도 없던 시절에 이렇게 적을 완벽하게 섬멸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학자는 칸나에 전투라고 하지 않고 칸나에 섬멸전이라고 부른다.

이 엄청난 승리의 비결은 무엇일까. 로마 사령관 바로는 과거에 기대어서 싸웠다. 로마군이 승리했던, 제일 잘하는 전술에 의지하고 병력을 한번에 투입해 전술의 위력을 높이려고 했다. 한니발은 로마군의 전술을 예측하고 창조적으로 대응했다. 과도한 병력이 전투 현장에서 약점이 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보병 대형을 교묘하게 움직여 로마군이 좁은 공간에 더 밀집하도록 유도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교과서와 현장의 차이다. 교과서는 상황과 변수를 고정시킨다. 나무를 밀면 뒤로 넘어진다. 현장은 다르다. 나무를 밀면 나무가 반동으로 되돌아오고, 옆의 바위를 건드려 돌무더기를 쏟아낸다. 교과서는 모형이고, 현장은 살아 있는 생물이다. 교과서는 정답이 아니라 현장을 이해하기 위한 가상의 공간이다. 바로가 교과서와 현장의 차이, 교과서 이용법을 몰랐던 것이 불행이었다.

칸나에 올리브 숲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나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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