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경력 10년이상 판사 임용, 충분한 논의없이 급조… 국민위한 대안 찾아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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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 경력 기준 개정안 놓고 논란

《판사 임용 시 법조 경력을 5년 이상으로 낮추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법조계에서 논쟁이 뜨겁다. 현행법은 2013년부터 시행된 이른바 ‘법조 일원화’로 2022년부터 7년 이상,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법조인만 판사에 지원할 수 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해 법사위 전체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10년 경력을 요구할 경우 판사 지원자가 감소해 ‘판사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개정안 통과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등은 “5년 경력을 요구할 경우 판사 사회의 폐쇄성과 법원의 관료화를 극복할 수 없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 법조 일원화, ‘소년 판사’ 폐해 막으려 도입

법조 일원화는 사회적 경험과 연륜을 갖춘 변호사를 판사로 임용해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게 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 도입 이전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소년 판사’들의 경험 부족 등이 논란이 되면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측면이 있다.

이후 로스쿨 제도 도입 등 사법제도 개혁과 함께 ‘법조 일원화’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와 2003년 출범한 사법개혁위원회는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춘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길 원하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판사 임명 전 5년 이상의 변호사 검사 등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2010년 2월 사법정책자문위원회도 “전면적 법조 일원화를 실시한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국회에선 10년 이상 경력자를 판사로 채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만 점진적 도입을 위해 △2013년부터 3년 이상 △2018년부터 5년 이상 △2022년부터 7년 이상 △2026년부터 10년 이상 등으로 경력 기준을 단계적으로 높이는 방향으로 2011년 법원조직법이 개정됐다.

○ “판사 부족 우려” vs “과거 회귀 안 돼”

2013년부터 8년간 이 같은 경력 판사 제도를 운영해 본 법원 내부에선 최소 경력이 늘어날수록 우수한 자원이 지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현실적 문제에 부딪혔다. 특히 내년부터 7년 이상 경력자만 판사 임용이 가능해지자 판사 부족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법원은 현행법대로 10년 이상 경력자만 판사로 임용하면 각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변호사나 검사는 판사에 지원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판사의 연봉 등 처우가 낮은 것과 무관치 않다. 정영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은 “10년 이상 경력자는 (그 분야에서) 이미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은 (판사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3∼2020년 판사로 임용된 783명 중 10년 이상 경력자는 총 19명(2.4%)이었다. 10년 이상 경력자의 판사 지원율이 저조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경력자만 지원할 수 있는 2026년부터는 판사 수가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판사 수가 부족해지면 재판이 늦어지고, 피해는 재판받는 국민들이 입게 된다”고 했다.

40세에 이른 10년 이상 경력의 법조인이 초임 판사가 되면 방대한 기록을 검토하고 판결문을 작성하는 현재의 재판 시스템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A 판사는 “사건이 너무 많아 젊을 때부터의 훈련이 필요한데, 40세 초임 판사는 너무 늦다”며 “의사로 따지면 40세에 본격적으로 수술을 배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신입 판사들은 설문조사에서 변호사 출신 판사들이 자신이 근무하던 로펌 등을 예우하는 이른바 ‘후관예우’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10년 요건을 반대하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한국법학교수회 등 법조계 주요 기관 및 단체도 ‘5년 요건’에 찬성하고 있다.

반면 민변은 10년 이상 경력자만 판사로 임용하는 현행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변은 지난달 16일 성명서를 통해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종전의 ‘판사 도제 시스템’으로 회귀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30대 중반의 초임 판사의 경우) 부장판사의 배석으로서 지도를 받으며 독립된 판단을 하는 판사가 아니라 부장판사의 보조적 지위로 자리매김해 합의 과정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민변은 “10년 정도 법원 밖에서 경험을 쌓아 객관적으로 법원을 평가한 사람이 판사가 돼 법원의 특권의식, 가족주의, 순혈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판사 증원, 사법 시스템과 같이 논의해야”


전문가들은 국회가 2011년 법 개정 당시 해외사례 등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10년 경력을 급조한 만큼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을 맡은 한기정 서울대 로스쿨 원장은 “10년 요건을 설계했을 당시 부정적 측면과 현실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했는지는 의문”이라며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추상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식과 독일식 제도가 뒤섞인 한국의 사법시스템으로 인해 이 같은 혼선이 벌어졌기 때문에 한국적 상황에 맞고, 국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한국은 판사 양성은 로스쿨 제도와 법조 일원화로 미국식, 재판 방식은 독일식이다. 미국에선 원고와 피고가 소송을 주도하며 판사는 제3자의 입장을 갖는 ‘당사자주의’가 정착했고, 민사·형사 재판의 결론을 배심원들이 결정하는 배심 재판이 많다.

반면 한국에선 배심원들이 재판을 하는 ‘국민참여재판’은 신청률이 저조하고, 판사가 방대한 증거를 검토해 자세한 판결문을 쓴다. 법원장 출신의 한 판사는 “국민들은 미국처럼 판사 한 명이 판결문 없이 판결을 내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경험이 많은 이를 판사로 임용하는 미국식 법조 일원화 제도하에 자세한 판결문을 작성하는 한국식 재판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5년 요건으로 완화해 30대 중반부터 판사 일을 배우게 해야 한다”고 했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김소영 전 대법관(56·사법연수원 19기)은 “현 상태에서 10년 요건으로는 국민에 대한 사법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며 “5년 경력의 초임 판사도 많은 기록을 검토하며 신속히 재판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는 어려울 수 있다. 판사 증원 등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에게 질 높은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어느 방향이 나은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강일원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62·14기)은 “5년이든 10년이든 법조 일원화가 도입된 이상 ‘어떤 자질을 갖춘 이를 판사로 뽑을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판사 임용#임용 경력기준 개정안#법조계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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