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슬픈, 자랑스러운 시위”…수요집회, 1500차 맞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14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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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세계에서 가장 슬픈 시위, 세계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시위가 1500차가 됐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14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제1500차 수요집회(수요시위)에서 “일본 정부가 성노예제를 중대한 반인도적 범죄로 인정하고 법적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피해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인권이 보장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14일 열린 제1500차 수요시위에서 성명서를 낭독하는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14일 열린 제1500차 수요시위에서 성명서를 낭독하는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첫 시위가 열린 지 29년 만에 이날로 1500차를 맞이했다. 이날 시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를 고려해 ‘언택트’ 형식으로 온라인 생중계됐다. 미국 일본 대만 등 14개국 1565명이 수요시위 공동주관인으로 참가했다.

●이용수 할머니 “학생들이 역사 알아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인터뷰 영상 캡처 사진. 제공=정의기억연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인터뷰 영상 캡처 사진. 제공=정의기억연대


이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3)는 기념 영상을 통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요시위에 참석해주신 여러분 정말 감사드린다”며 “하지만 아직도 변함이 없다. 일본은 아직까지 거짓말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월이 얼마나 기다려 줄지…. 그때까지 열심히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또 “일본은 이웃 나라다. 원수 되지는 않겠다. 교류를 해서 우리 학생들이 이 엄청난 역사를 아셔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인터뷰 영상 캡처 사진. 제공=정의기억연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 인터뷰 영상 캡처 사진. 제공=정의기억연대


또 다른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94)도 영상을 통해 “(일본은) 나이 어린 철 모르는 걸 데려다가 못 쓰게 만들었다. 끌어다가 고생시킨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며 “일본이 사죄를 하면 수요시위도 필요 없다. 그전까지는 수요시위를 계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올 1월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이옥선 할머니 등에게 “일본이 피해자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일본 정부는 “배상책임이 없다”며 이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같은 법원의 다른 재판부는 이용수 할머니 등에게 패소 판결을 선고해 2심이 진행 중이다.

●초등학생 참가 수기 “김복동 할머니라면 끝까지…”
지난해 7월 8일 제1447차 수요시위에 참가해 자원 봉사로 현수막을 들고 있는 초등학생 김민건 군(12).
지난해 7월 8일 제1447차 수요시위에 참가해 자원 봉사로 현수막을 들고 있는 초등학생 김민건 군(12).


초등학생의 수요시위 참가 수기도 공개돼 현장에 모인 참가자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초등학생 김민건 군(12)은 “지난해 박물관에서 산 김복동 할머니 티셔츠를 입고 수요시위에 참가해 자원 봉사로 현수막을 꼭 붙잡고 있었다”며 “방송국 카메라가 많아 긴장됐지만 고 김복동 할머니라면 놓지 않고 끝까지 들고 계실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오수연 양은 영상을 통해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며 “다른 미국인 청소년들과 함께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일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양징자 공동대표도 영상을 통해 “수요시위가 1500차까지 이어진 것은 그동안 일본 정부가 제대로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일본 시민으로서 큰 책임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30년간 수요시위 현장에 선 할머니들과 정의기억연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일본 시민들도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해 수요시위를 기억하며 다음 세대에 계승하겠다”고 덧붙였다.

●반대집회 속에서도 꿋꿋이 진행
14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제1500차 수요시위 인근에는 반대집회도 진행되고 있었다.
14일 서울 종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제1500차 수요시위 인근에는 반대집회도 진행되고 있었다.


수요시위 현장 옆에서 반대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1인 시위가 이어지는 곳에서 5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반대집회를 하던 A 씨는 “앵벌이들이냐 맨날 돈 달라 그러게. 위안부는 돈 벌러 간 것”이라고 했다. ‘위안부 사기’라고 적힌 띠를 몸에 두른 한 남성은 “돈 받고 서비스한 일본군 위안부 웬 성노예?”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수요시위 현장 옆에 서 있기도 했다.

●1000차 수요시위 땐 소녀상 건립
1992년 1월 8일 열린 제1차 수요시위 사진. 제공=정의기억연대
1992년 1월 8일 열린 제1차 수요시위 사진. 제공=정의기억연대


제1차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수요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다.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 공동대표를 맡은 윤정옥 이화여대 명예교수, 고 이효재 이화여대 명예교수 등은 당시 성명서를 통해 “수요일 정기집회를 실시하며 일본 정부에 대한 6개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임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이들이 1차 수요시위에서 밝힌 6가지 요구사항은 “△일본 정부는 조선인 여성들을 종군 ‘위안부’로서 강제 연행한 사실을 인정하라 △그것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라 △만행의 전모를 스스로 밝혀라 △희생자들을 위해 추모비를 세워라 △생존자와 유족들에게 배상하라 △이러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역사 교육 속에서 이 사실을 가르쳐라”였다.

2011년 12월 14일 제1000차 수요시위에서는 시위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기념하기도 했다. 앞줄 왼쪽에 고 김복동 할머니, 앞줄 오른쪽 길원옥 할머니, 뒷줄 왼쪽 고 김순옥 할머니. 제공=정의기억연대
2011년 12월 14일 제1000차 수요시위에서는 시위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기념하기도 했다. 앞줄 왼쪽에 고 김복동 할머니, 앞줄 오른쪽 길원옥 할머니, 뒷줄 왼쪽 고 김순옥 할머니. 제공=정의기억연대


정의기억연대는 다음달 14일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을 맞아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날은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 한국 사회에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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